진실함으로 회개할 때 용서할 마음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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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함으로 회개할 때 용서할 마음이 생깁니다
  • 곽인섭 목사(서울백석대학교회담임, 백석대학교대학원 교목실장)
  • 승인 2022.11.16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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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회개용서운동① - 용서받은 죄인의 용서

우리 교회의 한 집사님께서 예전에 매월 방세를 도와준 사람에게 거액의 사기를 당하셨습니다. 억울하고 화가 나서 사립 탐정을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냈어도, 곧바로 잡지 않고, 공소시효 동안 계속 추적만 했습니다. 고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립 탐정에게 매달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루하루가 너무 괴로웠습니다. 머리가 아팠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어느 날 용서를 결심하고, 돌려받아야 하는 돈에 대한 계약서를 찢어버리셨습니다.

그런데 그 직후 두통과 고통이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용서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용서는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영적인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회개와 용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용서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의 세 번째 실천운동은 ‘회개용서운동’입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서로를 용납하여 하나 되는 것을 추구하는 회개용서운동입니다.” 회개용서운동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①회개(자신을 돌아보고) ②용서(서로 용납하여) 그리고 ③하나됨 입니다.

먼저, 회개가 중요합니다. 회개는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첫 번째 말씀이 회개였습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천국을 맞이하는 방법이 회개입니다. 여러분, 천국이 다가오지 않습니까? 교회는 오래 다녔는데, 신앙생활이 별로 감동이 없습니까? 회개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입니다. 회개를 어떻게 하느냐 하면, 정직하면 됩니다. 시편 51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시편 51편은 회개의 교과서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윗의 죄의 내용을 굳이 밝히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회개의 실제적인 방법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정직하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말했습니다. 나의 죄를 대충 얼버무리지 말고, 언제, 누구에게, 무슨 행동을, 어떤 말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리면, 회개가 일어납니다. 천국이 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실한 회개가 이루어지면, 우리 속에는 자연스럽게 용서할 마음이 생깁니다. 용서는 회개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용서받았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지, 내 인격으로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마 18:32~33)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오늘날 회개와 용서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십자가 복음’이 약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복음이 약화되면, 하나님과의 나의 관계보다는, 소원성취에 집중하게 됩니다. 회개가 약화되니 자연스럽게 용서가 약화되었습니다. 회개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십자가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자기부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도 잘 난 것 없다, 나도 똑같다는 인식에서 회개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십자가 복음이 약화되고, 회개가 약화되면서, 나의 들보보다 다른 사람의 티끌이 커 보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보다는 판단하는 것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많아지는데, 회개와 용서는 작아지고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이 성령과 큰 확신 가운데 선포되면, 다른 사람의 죄보다 나의 죄가 보입니다. 20세기의 선지자라고 일컬어지는 에이든 토저 목사님의 책 <이것이 예배이다>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마치 이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처럼 영혼의 고독 속에서 하나님과 일대일로 만나는 경험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깨달을 수 없다.” 기독교 신앙은 공동체적이면서도 개인적이고,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체적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를 위한 십자가가 나의 심령에 분명하게 세워졌을 때,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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