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믿고, 묵상하고, 깨달아, 전하여서, 영혼을 살리고,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모두는 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생각해 볼 시편 119편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입니다. 특히 6절부터 8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세 가지 자세가 나옵니다.
첫째, 말씀을 주의해야 합니다. “주의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6절) ‘주의하다’는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만들어서 나의 창작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하라’는 집중해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실 때, 우리 집중해서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자에 ‘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글자들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볼 시[示]’ 자와 ‘볼 견[見]’ 자를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자성어 중에 <시이불견示而不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기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보기는 하는데 안 보입니다. 그냥 보니까 안 보이는 것입니다. 주의해서 봐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말씀은 그냥 멍하니 보면 안 보입니다. 주의해서 봐야 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눈이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열려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 눈을 열 수가 없습니다. 에베소서에는 성도들을 위한 중요한 기도가 두 개 있는데, 1장 뒷부분과 3장 뒷부분입니다. 1장의 기도에서 제일 우선적으로 나오는 기도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엡 1:17~18). 성령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두 번째 자세는 ‘배우는 것’입니다.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7절)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배워야 합니다. 배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영혼들과 교회를 섬길까요?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6:19~20)” “내가 말씀을 주사” 즉, 내가 연구하고 상상력을 펼쳐서 창작해내는 것이 아니고, “내게 말씀을 주사”…‘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신’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사신’은 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신, 대사입니다. 나의 말과 사상, 나의 사회비평을 위해서 말씀을 가져오는 사람이 아니고,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에 따라 교회를 바라보고, 말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과 친밀해야 합니다. 목사님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 목사님이 설교 잘 하게, 은혜롭게 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로는 부족합니다. “주님, 우리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설교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하십시오.
말씀을 대하는 마지막 자세, 신학하는 마지막 자세는, ‘지키다’ 입니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8절).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시 119:56~57)” 시편 119편의 시인은 심한 고난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소유가 있습니다.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재산입니다.
에스라는 2차 포로귀환의 지도자입니다. 1차 귀환은 스룹바벨을 통해서 일어났는데, 성전이 재건됩니다. 에스라 6장까지 성전이 재건됩니다. 에스라 7장에 가서야 에스라가 등장하는데, 성경은 에스라를 말씀의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7:10)” 성전건물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공동체가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 말씀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에스라가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연구하여 가르치기로 결심했다…이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준행하며’…하나님 나라를 재건하는 이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준행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말씀을 ‘주의해서 바라보고’, ‘배우고’, ‘지키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신학회복운동② - 신학을 공부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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