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눈부신 LED 조명으로 꾸민 의상을 입고 전동휠을 탄 한 여성이 전자바이올린으로 화려한 음율을 뽐내며 관객들을 압도한다.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신나는 연주와 노래는 얼핏 들으면 K-POP 스타의 공연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한 ‘찬양집회’다.
이 여성의 정체는 천부적인 재능을 인정받아온 아티스트 ‘해나리’(Hannah Lee) 씨다. 노래하는 전자바이올리니스트로 잘 알려진 그는 지난 11년간 국내는 물론 해외 26개국을 돌며 복음을 전해온 ‘음악선교사’이기도 하다.
과거 뮤지션을 포기해야 할만큼 절망적이었던 순간 만난 하나님에 대한 감사함으로 이제는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하고 있는 해나리 씨. 과연, 그가 세상의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화려한 레드카펫 대신 십자가의 붉은 보혈 위에 서는 좁은 길을 택한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광야 끝에 마주한 기적
“제가 5대째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정작 주님을 만난 건 20대 때였어요.” 하나님이 부르시면 험한 오지도 마다 않고 달려가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노래하고 연주하는 전자바이올리니스트 해나리 씨. 짤막한 간증이 더해지는 그의 집회에선 누구라도 은혜에 젖어들기 때문에 이 같은 그의 고백은 의외였다. 더욱이 ‘모태신앙’은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수식어였다.
그러나 그의 유년기를 들여다보면 제법 고개가 끄덕여진다. 11살 무렵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해나리 씨는 그저 동양인이란 이유로 받는 인종차별 이외에도 뛰어난 학업성적과 바이올린 실력으로 친구들의 시샘을 한몸에 샀다. 그리고 이는 끔찍한 왕따로 이어졌다. 소위 일진으로 불리던 아이들은 그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고 머리에 껌을 뱉는 등의 괴롭힘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해나리 씨는 사춘기 시절을 술과 담배로 보냈다. 그렇지만 타고난 재능 덕분에 오클랜드 대학에 조기입학한 그는 이 모든 게 자신의 노력으로 이뤄진 결과물이란 교만한 생각에 빠져 지냈다.
하나님을 외면한 채 승승장구하던 그를 돌이킨 건 대학교 2학년생이던 어느 날 갑자기 왼팔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마비가 찾아오면서다. 특히 미래가 촉망되는 뮤지션으로서 그에게 왼팔의 마비증상은 ‘사형선고’와도 같은 청천벽력이었다. 그 길로 내로라하는 실력의 병원과 의사를 다 찾아다녔지만 치료에는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모를 통증으로 절망한 그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다.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랐지만 그 중심에는 예수님이 없는 껍데기 신앙이었죠. 막상 위기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저에게 하루는 교회 권사님이 와서 ‘해나야, 우리 모두 널 위해 기도하고 있어.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보다 네 기도를 가장 기다리고 계셔’라고 말해주는데 아차 싶더라고요.”
밑져야 본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해나리 씨는 새벽기도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몇 달은 계속 저의 죄를 회개했어요. 그런데 기도가 깊어지면서 주님은 저에게 ‘이 광야의 시간 끝에 축복의 땅이 도래할 것’이란 확신을 주셨어요. 이에 저는 ‘하나님, 제 팔을 고쳐주시면 앞으로 바이올린을 제 명예가 아닌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눈물의 기도를 올려드린지 꼬박 2년. 마침내 하나님은 신실하게 응답하셨다. “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마음이나 육신이 아픈 사람이 있으면 치유로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란 목사님의 말이 완전히 믿어졌어요. 그래서 ‘아멘!’으로 화답하는 순간 왼팔에 전기가 통하는 듯한 짜릿한 느낌이 오더니 통증이 사라지는 거예요. 진짜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뜨거운 성령의 임재
해나리 씨는 지난 11년간 연평균 500회에 달하는 집회를 열었다. 많게는 하루 다섯 번씩도 무대에 오를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다. 국내 사역지는 시골교회와 미션스쿨, 군부대의 각종 전도축제나 간증집회·부흥회를 망라했고 해외 역시 미국·일본·중국·대만·호주·몽골·아프리카·인도네시아·베트남 등 26개 나라를 돌며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했다.
그는 작곡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해나리 씨는 2008년 1집 ‘J.C maniac’을 시작으로 이제까지 2집 ‘The Promise’ 3집 ‘Go Back’ 앨범을 발매했다. 그는 “기존에는 전자바이올린으로 켤 수 있는 찬송이 거의 전무해서 나만의 음반이 절실했다”며 “비기독교인들도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도록 가사에 십자가를 숨겨 일반 가요처럼 썼다”고 했다.
가녀린 체구에서 이토록 쉴 새 없이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었던 까닭을 묻자 그는 “바로바로 맺히는 열매들을 직접 눈으로 보기 때문”이란 대답을 내놨다. 그도 그럴 것이 해나리 씨는 그동안 무수한 집회를 통해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체험했다.
“레위합창단과 미국을 투어할 당시였어요. 한 번은 단원들과 함께 찬양집회를 위해 이동하는 차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성령이 임하셔서 거의 전원이 방언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죠. 또 한 번은 현지 교회에서 기도회를 갖는데 어린이 중 한 명이 아무 것도 없는 십자가 옆에 천사가 보인다는 거예요. 아이들의 순수한 믿음에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신 거죠.”
그런가 하면, 어느 여학생은 광주서 열린 청소년 캠프에서 그의 간증을 듣고 예수님을 만났다며 고마움의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삶의 벼랑 끝에서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던 학생이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돌이킨 것. 이 같은 소식에 해나리 씨는 눈이 붓도록 한참을 펑펑 울었단다.
“하나님이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저를 광주까지 내려가게 하셨단 걸 깨닫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돌아보면 제가 왼팔의 마비로 광야의 길을 걷던 지난 2년의 시간 또한 다 하나님의 계획이었어요. 이 기간 보컬부터 댄스, 각 나라의 언어들을 배운 게 지금 제 사역의 밑거름이 됐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콜링이면 어디든지 순종해 나아갑니다.”
그는 ‘한류열풍’을 빌려 K-POP 콘서트를 개최해 복음을 전하는 ‘문화선교’에도 열심이다. 개중에서도 인도네시아에서의 ‘본웨이브’ 사역을 잊지 못한다. 당시 해나리 씨와 똘똘 뭉친 아티스트·선교사·스텝 등 20여 명은 수도 자카르타를 비롯해 6개 도시에서 K-POP 콘서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몰려든 수만 명의 관객 중 수천 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로 결신했다.
“K-POP을 활용한 문화선교는 특히 전도가 금지된 국가에서 효과적입니다. 다만 제 역할은 누구보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선교사님들을 돕는 것이죠. 또 제가 연주하고 떠나면 현지인들이 SNS로 저를 검색하면서 자연스레 기독교를 접하게 되는데 이 또한 귀한 열매입니다. 복음을 전할 수 없는 나라에서 꼭 제가 복음을 전하려는 건 ‘자기 의’를 드러내는 일이에요.”
다음세대에 전하는 소망
해나리 씨의 사역이 늘 순탄한 건 아니었다. 첩첩산골에 위치한 군부대는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음향시설도 열악했다. 시골교회의 경우 야외 무대에 설 때가 많은데 날씨는 고사하고 밝은 조명 아래수백 마리의 벌레 떼가 모여들어 방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배당 공간이 협소해 굽 높은 힐을 신고 바이올린 활을 위로 끝까지 들어올리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도 속출했다.
“연주자로서 저의 기량을 맘껏 발휘할 수 없는 순간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주님 한 분만으로 행복해한다면, 이보다 더 성공적인 공연이 어딨겠어요. 잃어버린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올 때 천국에서는 더 큰 잔치가 일어날 텐데요. 사역자는 박수와 환영을 받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계신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사역의 은혜가 큰 만큼 영적전쟁도 치열했다. 태국에서 열린 ‘블레싱 타일랜드’ 집회 때였다. 공연을 얼마 앞두고 연습하던 중 그만 실수로 허리 디스크가 악화됐다. 조금만 움직여도 ‘으악!’ 고통스런 신음이 새 나왔다. 도저히 집회를 강행할 수 없을 처지였지만 기도 가운데 받은 마음에 순종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또 한 번 기적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리허설 도중 허리를 짓누르던 아픔이 사라졌어요. 이를 모든 행사 관계자들이 똑똑히 지켜봤죠. 그때 주님이 저를 태국 땅에 보내신 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할 목적도 있었지만 제 허리를 고치시기 위함임을 확신했습니다. 동시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축복의 통로가 된 셈이죠. 사역자가 믿음으로 발걸음을 떼면 주님은 실로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최악의 환경에서도 최고의 믿음을 보이면 최선으로 역사하신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온 몸으로 체험한 해나리 씨. 세상적인 아티스트로서 부와 명예를 쌓는 것에 한치의 미련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상 뮤지션은 공연이 끝나면 종종 공허함을 느낀다고 해요. 그렇지만 주님의 영광을 위해 노래하고 연주하는 저는 한량없는 은혜를 누립니다. 저 역시 매일같이 죄를 반복하는 죄인이에요. 하지만 무대에 올라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다보면 뜨거운 회복을 체험하죠. 매번 제 사역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한편, 해나리 씨는 현재 ‘자살예방 강연자’로도 활동하며 사역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특별히 자라나는 청소년, 즉 ‘다음세대’가 살아나길 소망한다.
그는 “기독교계에서 비주류로 꼽히는 전자바이올린을 택한 것도 비기독 청소년·청년들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며 “어렸을 때 왕따를 당했지만 나의 궁극적인 정체성은 ‘왕딸’ 다시말해 왕 되신 하나님의 딸이란 사실을 알려주는 멘토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신앙적으로 잡아줬다면 더 일찍 주님께 헌신할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고 회상했다.
“과거의 저처럼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이제는 제가 ‘너희는 천국의 시민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도 한때는 죽고 싶어서 차가 쌩쌩 달리는 6차선 도로를 미친 듯이 뛰어다녔지만 끝없이 들었던 성경말씀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이에 예나 지금이나 제 비전은 한결같이 ‘영혼구원’입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어떤 형태로든 순종해 나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