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생명신학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잘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을 쉬운 말로 표현하면, ‘예수생명 예수생활’입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은 평생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이것은 ‘생활’입니다. 어떤 것만 주께 하듯 하고, 한 가지만 주께 하듯 하고, 이건 겉치레이고, 휴가이고, 취미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지’, 이것은 ‘생활’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고”, ‘예수생활’입니다.
19세기 말 영국 감리교회의 영적 지도자였던 사무엘 채드윅이라는 목사님은 자신이 예수님을 진실하게 영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 살 때였는데, 그 주일에는 외부의 강사님이 오셔서 교육부서에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그 중에 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어린 소년의 마음에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만약 내가 구두닦이라면 우리 마을에서 최고의 구두닦이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신으실 구두라고 여기며 닦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채드윅이 이 말에 감동한 이유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 아버지 구두를 닦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월요일 아침, 사무엘은 아버지의 구두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하기 싫은 일을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낫다는 원리에 따라 고무장화부터 닦았습니다. 고무장화를 다 닦고 나자 문득 그 강사님의 말이 떠올라서 자기가 닦은 장화를 쳐다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신으실 만큼 괜찮아 보이는지 자문해 보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한 번 더 닦았습니다. 그는 그 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예수생활’입니다.
우리 교회의 어떤 성도님이 신년 특별새벽기도회 때 ‘영적 성장의 목표’를 쓰시면서, 단순하지만, 핵심적인 것을 써 주셨습니다. ‘예수님 흉내 내기’…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진 특징은, 잘 안 되어도 예수님을 흉내 내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생활’입니다.
그런데 우리 힘으로 ‘예수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 하나의 해결책이 나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이 말씀은 분리해서 읽는 것이 좋습니다. ‘행하라’는 ‘예수생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행할까요? ‘성령을 따라’ … 이것이 바로 ‘예수생명’입니다. 내 힘으로, 내 의지로 ‘예수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예수 생명입니다. 예수생활은 예수 생명으로 가능합니다.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생명신학입니다.
방금 본 골로새서와 갈라디아서와 같은 서신서들은 교회에 대한 ‘직접적인’ 가르침을 줍니다. 물론 다른 말씀들도 교회를 향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마가복음은, 핵심주제가 ‘고난을 통해서 승리하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마가복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고난 중에 있는 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하십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간접적입니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가 아니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방식, 즉 간접적인 방식입니다. 그러나 서신서는 직접적입니다. 복음서가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교회 가운데 구체적으로, 성도들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를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서신서입니다.
그런데 서신서는 처음부터 예수님처럼 살라고 하지 않습니다. 엡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에베소서는 전체가 6장인데, 이 말씀부터, 4장부터 예수님처럼 생활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앞에는 무슨 내용입니까? 1장부터 3장에서는 ‘우리가 받은 복음’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은 우리 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예수님 밖에 있던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능력, 예수님이 승천하신 그 능력이 예수 믿는 우리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생명’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이루신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 속에 있습니다.
‘예수생활 예수생명’은 신앙생활의 핵심이고, 개혁주의생명신학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과 활동들 속에 스며들어 있는 정신이고, 기준입니다. 말씀을 봐도 ‘예수생활 예수생명’, 만나서 교제를 해도 ‘예수생활 예수생명’, 여행을 가도 ‘예수생활 예수생명’, 놀아도 ‘예수생활 예수생명’.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생명신학입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잘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3. 예수생명 예수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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