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뜻은 항상 선하고 온전하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선하지 않은 방법으로 성과를 구하고 온전하지 않은 일을 행합니다. 하나님의 이름만 있고 하나님은 안 계신 것 같은데 크게 성장하고 부흥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만 아시는 일이기에 함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켜보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를 위로하고 바로잡아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A. J. 크로닌’이 쓴 소설 ‘천국의 열쇠’의 주인공인 치점 신부입니다.
제가 이 책을 만났을 때는 입대를 앞두고 처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입니다. 주님에 대한 첫사랑이 불타던 시절이라 신앙 서적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때 가톨릭 서적인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치점 신부가 참 답답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목회의 길을 걷게 되면서 그가 가장 온전한 성직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치점 신부에게는 안셀름이라는 어린 시절의 친구가 있습니다. 치점은 고아로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고, 안셀름은 유복한 가정의 아들이었습니다. 둘 다 장성하여 신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사역의 지향점이 너무 달랐습니다. 치점은 인간적인 성공에 대한 야망 없이 오직 주님의 뜻대로만 섬기려고 노력하는 신부였습니다. 반면에 안셀름은 번듯한 외모와 언변, 그리고 뛰어난 처세술로 승승장구하며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달려가는 신부였습니다.
치점은 보좌신부 시절 빈민 탄광촌 성당에서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역으로 많은 신도의 인정을 받았지만 그를 시기한 주임 신부의 모함으로 쫓겨난 후에 평생을 중국 선교사로 섬겼습니다. 숱한 고난과 박해를 겪었고, 창궐한 흑사병과 내란으로 인하여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열악한 상황에서 참된 섬김의 본을 보여 신자와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많은 중국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실만한 복음의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둔 성과는 대부분 안셀름이 가로채 출세의 밑천으로 삼았습니다. 결국 치점은 본국이나 교황청의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늙고 병든 몸으로 돌아와 고향의 작은 성당을 맡게 됩니다. 그러나 치점을 더 큰 출세의 걸림돌로 여긴 안셀름이 그의 성당으로 비서를 보내 감사보고서를 쓰게 합니다. 며칠 동안 치점과 생활하며 그의 모습을 지켜본 비서가 안셀름의 지시대로 악의적으로 작성했던 보고서를 찢어버리는 것으로 소설이 끝납니다.
자신의 유익을 전혀 구하지 않고 복음 전파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한 섬김의 길을 걸었지만, 오히려 은퇴를 종용받는 치점 신부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장 빠른 출세의 길을 좇아온 끝에 최연소 주교의 자리에 오른 안셀름 신부, 이들 중에 과연 누가 주님으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받게 될까 하는 것이 작가인 크로닌의 물음입니다.
신부들의 삶을 다룬 소설이지만, 작가가 가톨릭 신자인 아버지와 개신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한 까닭에 작품 속에 개신교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가 담겨있습니다. 반면에 조직의 부조리한 행태를 통해 당시 가톨릭이 왜 부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인물들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사건들도 흥미롭지만,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두 신부의 삶을 통하여 목회자인 나를 성찰할 수 있게 해주며 주님이 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기에 이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신부들 이야기지만 오늘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