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의 모임은 많다. 하지만 누군가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MK(Missionary Kids)라 불리는 선교사 자녀들의 집단은 독특하다. 그만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특별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이 아니다. 몸에 흐르는 피와 귀에 들리는 언어가 다르다. 선교지와 고국 어디에서건 타자가 된 것만 같다. 방황하는 이들을 위해 한국선교사자녀교육개발원(원장:김백석, KOMKED)이 세워졌다. 2002년 설립 이후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든든한 배경이 되어온 콤케드를 지난달 12일 만났다. 인터뷰는 동아시아 MK로 성장해 이제는 KOMKED에서 다른 MK들을 섬기고 있는 강평강 팀장과 진행했다.
우리가 키우는 MK
시작은 미약했다. 필리핀에 한국인 선교사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던 1994년. 주요 도시에 선교사 자녀 학교가 있었지만 대상은 거의 서구권 선교사들로 한정됐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모여 초중고 12학년 과정을 갖춘 마닐라 한국아카데미가 설립됐다. 콤케드의 전신이자 MK 케어 사역의 출발점이었다.
1999년 KWMA에서 MK 사역위원회가 발족하며 사역에 밑그림이 그려졌다. KOMKED의 주요 사역 중 하나인 MK연합수련회가 열린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색을 칠한 것은 2002년. KWMA 산하 독립연대기구로 한국선교사자녀교육개발원이 세워졌다. 초대 이사장은 임덕순 목사, 초대 총무는 김신자 선교사가 맡았다.
“초기 사역은 연합수련회와 MK를 위한 한국어 교재 발행에 집중됐습니다. 지금은 K-POP이 유행하면서 한국어 교재가 많아졌지만 10여 년 전만해도 그렇지 않았죠. 해외 선교지에서 자라는 MK들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라도록 돕기 위해 직접 한국어 교재를 발행하고 배포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KOMKED의 대표적인 사역인 MK들을 위한 캠프는 벌써 23회째 이어지고 있다. MK연합수련회로 출발해 지금은 선교사 자녀 리더십 캠프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코로나 전에는 매년 초중고 MK 200여 명이 함께 하며 치유와 회복을 경험했다.
탄탄대로를 달려오던 캠프에 코로나19라는 장애물이 등장하며 제동이 걸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참가자 스스로 방역지침을 지키고 책임질 수 있는 청년 대학생 MK로 대상을 바꾸고 운전대를 틀었다. 방향전환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초중고 학생들은 우리가 케어해야 할 대상이었지만 청년 대학생들은 달랐어요. 스스로 캠프를 개척해나갔고 캠프 이후에는 KOMKED의 든든한 동역자가 되어줬습니다. 올해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면서 열리는 캠프에는 지난 2년간 참여했던 청년 대학생 MK들이 스태프로 자원해서 섬기러 옵니다. 직장인 중에는 휴가를 쓰고 캠프에 참가하는 친구도 있어요.”
캠프 후에도 네트워크는 이어진다. MK들이 스스로 자체적인 후속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했고 KOMKED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캠프가 끝나고 반년 동안만 해도 특강과 추석모임, 코칭 워크숍, 크리스마스 모임 등 다양한 후속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코로나로 인해 새롭게 시작된 사역도 있다. 많은 선교사들이 비자발적 철수를 하게 되면서 자녀인 MK 역시 국내에 머무는 이들이 많아졌다. 문제는 교육이었다. 한창 학교에 다녀야할 나이임에도 제한이 많아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고, 가더라도 한국의 학교 분위기에 쉽사리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들을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한국 선교를 견인한 선교사님들이 나이가 들면서 MK도 대학생 이상이 60%를 넘어요. 이들을 멘토로 선발해서 비자발적 철수를 겪은 청소년 MK를 정서적으로 지원하고 학습 환경 변화에 따른 교육적 필요를 제공하는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MK를 MK가 케어하는 선순환 교육모델이 만들어진 거죠.”
‘Kingdom Builders 멘토링’이라 이름 붙여진 프로그램은 현재 3기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2월 첫 기수를 시작했고 6개월의 기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며 멘토와 멘티가 함께 성장한다. 지금까지 선교지 16개국에서 멘티 28명, 선교지 10개국에서 멘토 27명이 참여했다. 멘토들에게는 활동을 위한 장학금도 주어진다.
MK들의 한국에서 살아남기
MK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나이는 보통 대학교에 가야할 시기. 청소년기를 모두 선교지에서 보내다 성인이 되어 갑자기 마주한 한국은 고국이라기엔 너무도 생경하다. KOMKED는 이들을 위해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오픈카톡방 등 커뮤니티를 운영한다. 중복 참가 인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커뮤니티에 참가하고 있는 수는 4천6백여 명에 이른다. 캠프와 멘토링이 교육과 양육에 초점을 맞췄다면 커뮤니티 운영은 돌봄과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국내 또는 해외에서 MK들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급한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KOMKED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MK들에게는 큰 격려가 된다. 한국에서 지내는 MK들을 위한 정기예배도 매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마련돼 있다.
천정부지로 오른 한국의 집값도 선교지에서 온 MK들에게는 너무도 큰 부담. 그래서 KOMKED는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MK 청년주택 ‘콤콤하우스’를 오픈했다. 서울 회기와 마포에 각각 한 곳, 가평에 단기 체류 MK들을 위한 한 곳이 운영 중이다. 조만간 1곳이 더 추가로 운영돼 MK들의 집 걱정을 덜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주거문제로 고민하는 MK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사우나에서 사는 MK들도 적지 않았을 정도에요. 그나마 대학생들을 위한 학사관은 교회에서도 운영하고 있는데 졸업 이후엔 막막할 때가 많죠. 그래서 대학생들은 MK들이 가기 좋은 학사관 리스트를 만들어 추천해주고 콤콤하우스는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 선교의 미래가 되도록
KOMKED가 MK들을 섬기는 이유는 뭘까. 선교사 자녀로 자라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면 반쪽짜리 대답이다. 강평강 팀장은 MK들이 한국 선교의 미래가 될 수 있다며 눈을 빛냈다. MK들이 품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 덕분이다.
“선교사로 헌신하는 청년들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MK들을 보면 희망이 있어요. MK들은 선교지 언어를 따로 배울 필요 없이 능통하고 언어보다 습득에 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현지 문화에도 완벽히 적응하고 있어요. 선교지에서 자라나면서 갖춘 인적 네트워크도 풍부하죠. 이들에게 사명이 주어진다면 한국선교에 희망이 있습니다.”
키즈(Kids)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탓에 MK를 떠올리면 마냥 어리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KOMKED는 20살 이상 성인이 된 MK가 전체의 60%가 넘는다고 파악하고 있다. 한국교회와 KOMKED의 섬김을 통해 자란 MK들은 이제 섬김의 주체가 될 준비를 마쳤다.
“MK들과 한국교회 청년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개성과 장점을 지닌 청년들이 모이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특히 MK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는 TCK(Third Culture Kids)를 섬기는 일에 MK들이 쓰임받기를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MK들이 섬겨야 할 대상에서 섬기는 대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한국교회 성도분들도 함께 지켜보고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