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더 정직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하나 적어도 목회자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좇아가면 그곳에 주님이 계셔야 한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보다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더 겸손하고 진실해 보인다.”
신학생 시절 프로테스탄트 사상사를 배울 때 교수님이 칠판에 ‘가르칠 敎’와 ‘가리킬 指’를 적으시더니 하셨던 말씀이다.
세례요한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요 1:29~30)라고 증언하고 있다. 6개월 먼저 이 땅에 와서 예수의 오심을 준비한 요한은 예수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 세례요한의 등장 시점이나, 대중적인 지지와 영성을 볼 때 예수에 대하여 가르칠 만도 했지만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 이렇게 지도자는 메시지를 삶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가르침이라면, 가리킴은 방향 설정을 의미한다. 스승의 가르침대로 하면 모범생이 배출되고,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모험 생이 되는 것이다. 온실안의 화초처럼 예쁘고 보기 좋긴 한데 모험과 야성이 사라진 교회, 교회 성장 아니 생존이라는 키워드에 함몰된 오늘이다. 성서는 분명 부활하신 주님은 갈릴리에 계신다고 약속하셨지만 여전히 예루살렘의 왕궁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우리들, 병자와 귀신 들린 자와 고아와 과부들이 있는 곳에 주님 계심을 발견하면서도 건강하고 사회적 결점(?)이 적은 소위 성공한 사람들 곁을 선호하고 성공을 지향하고 있다.
이제는 다른 이들을 자꾸 가르치려는 우리들의 습성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걸핏하면 한국교회를 향해 마치 예언자라도 된 것처럼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고 웅변하듯 나무라는 분들 역시 이제는 웅변 모드에서 침묵 모드로 전환되기를 소망해 본다. 물론 그렇다고 예수그리스도를 가르치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경험하고 깨달은 것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증언하기에 부족하니 차라리 겸손하게 그분이 계신 곳을 그분이 그토록 우리게 알리려고 애쓰신 것을 가리키는 편이 정직한 우리의 고백이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 씨가 “지휘자는 소리를 내면 안 된다. 소리를 내려면 지휘봉을 내려놓거나 공연 이후로 미뤄두어야 한다”는 말은 두고두고 되새겨 볼 말이다. 지도자는 수많은 말이 아니라 그가 가리키는 삶으로 말하는 것이다.
십자가 주님 앞에 나아가 가르치기만 하려는 습성을 바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귀를 달라고 기도하는 올해 사순절이 되기를 소망한다. 대통령 선거도 끝났다. 세상을 금방 구원할 것 같았던 청와대를 차지하려는 경쟁도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되 주님이 걸어가신 손해 보는 좁은 길을 아주 조금이라도 같이 걷는 사순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종생 목사/글로벌디아코니아센터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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