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교인 위한 ‘성경개론학’ 교재 만들어
풍부한 연합사업 경험, 첫 청소년 콘서트 도입
29살에 신앙생활을 처음 하게 됐으니 늦은 편이다. 충북 청원 시골마을에서 자랄 때부터 권상일 목사는 교회에 나가고 싶었다고 했다. 밤이면 교회에서 들려오는 찬양소리가 너무 좋았고, 도시에 머물 때도 교회 차임벨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었다. 음치였던 그는 혹시 노래라도 시킬까봐 교회에 먼저 나가지 못했다. 감사하게도 시집온 형수님들이 전도를 해주어서 늦었지만 예배당에 첫 걸음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목회의 길을 걷게 되었다. 본인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길을 하나님은 평생 걷게 하셨다. 권 목사는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목회를 하겠다”고 했다. 목회가 재밌다는 것이다. 시험이 오고 위기가 와도 잠을 못자더라도 그에게 목회는 무척이나 행복한 삶이라고 고백했다.
“주님 때문에 개척 위기 버텨내”
“교회를 다닌 지 3개월 만에 새벽예배를 나갔는데 몸이 얼마나 뜨거운지 점심까지 그러는 겁니다. 기도하면서 감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대학병원에서조차 병명이 나오지 않던 아픔이 가시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늦게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주님과의 첫 만남은 뜨거웠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청년을 보면서 주변에서 신학공부를 권유했다. 담임목사님은 훌륭한 배필을 소개시켜 주었다. 지금도 목회의 든든한 동역자인 김영미 사모다. 직장생활을 하다 진급을 목전에 두고 결국 신학을 결심하게 됐다.
권 목사는 “아내가 풀빵장사를 해서라도 뒷바라지 해주겠다고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기 때문에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신대원 재학 중 당시 최낙중 목사가 시무하던 해오름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해 3년 동안 부교역자로 섬겼고, 마침내 2003년 연고 하나 없는 화성에서 교회를 처음으로 개척했다.
“성도 3명이 있을 때 멋모르고 월세 150만원을 내야하는 장소를 임대해 휴대폰 요금조차 내지 못할 정도까지 몰리기도 했습니다. 정말 목회를 그만두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 때마다 제 마음에 ‘내가 너를 사랑하고 함께한다’는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권상일 목사가 개척 초기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은 돕는 손길을 붙여주셨다. 그렇게 3년을 버티니 성도가 50명으로 늘어 교회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됐다.
말씀에 중심 둔 성령체험 강조
목회가 늘 순탄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위기가 행복한교회에 다시 닥쳤다. 교인들 간 갈등이 불거졌고 그 여파로 50명이었던 교인이 8명으로 격감한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 그야말로 엎어졌다. 다시 일어나기 쉽지 않은 때 권 목사는 오히려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을 뜨겁게 경험했다고 이야기했다.
“아내와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시고 고비를 이겨내기 쉽도록 힘을 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힘들다고 안고 가는 것이 아니라 털어버리는 낙천적인 성격도 도움이 되었지요. 감사한 것은 우리 교인들이 목회자와 다투지 않는 것도 감사한 일이죠. 저는 목회가 참 재밌어요. 잠을 못자도 정말 재밌습니다.”
권상일 목사는 말씀을 벗어난 성령체험을 반드시 경계하도록 교인들을 양육하고 있다. 교인들에게 성경공부를 유독 열심히 강조하는 것도 체험보다 오직 말씀이 중요함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는 매일 아침이면 전 교인들에게 오늘 읽어야 할 말씀구절을 찾아 올려주고 꼭 읽고 묵상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우리 교회는 말씀을 세워가는 교회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경공부도 많이 하는데 처음에는 성도들이 냉랭하게 반응하다가도 말씀의 깊이에 빠져들게 됩니다. 전하는 말씀도 십자가 은혜, 복음에 항상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권 목사는 교인들을 위한 성경공부 교재를 무려 2년 동안 공을 들여 직접 만들기도 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개괄하는 내용으로, 성경을 기반에 두고 다양한 주석 자료를 활용했다. 교인들에게 꼭 맞는 ‘성경개론학’ 교재를 만든 것이다. 교회 주보에는 매주 교리 자료도 싣고 있다.
“정직 목회로 성도 한 사람 세울 것”
권상일 목사는 지역 교회연합회 사역에도 잔뼈가 굵다. 화성시기독교총연합회 사무차장 1년, 사무총장 2년을 지내다 지난해에는 화기총 총회장으로 섬겼다. 코로나19를 겪는 동안 어려움이 컸던 교회들을 위해 권 목사는 큰 교회와 작은 교회를 잇는 교각 역할을 해주었다. 특히 그는 교회와 관련해 민원이 발생하면 오랫동안 연합사업을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관공서와 소통하면서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다.
권 목사는 “지역에서 늘 만나는 우리 교단 목사님들이 특별히 많은 힘이 되어 주셨다.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기꺼이 가진 것을 내어주었기 때문에 연합회 사역도 잘 마칠 수 있었다”면서 일일이 이름을 거명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애썼다.
코로나19 때문에 모두가 지쳐있던 지난해 11월에는 ‘화성시 청소년·청년 문화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화성시와 협력해 지역사회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회를 만든 것. 꿈과 도전을 주기 위한 콘서트는 올해도 화기총이 개최한다. 권 목사는 인적 네트워크와 경험을 바탕으로 여전히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또 화성시 포괄적 차별금지법 대책위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권상일 목사는 이제 목회 정년까지 약 10년이 남았다. 아직도 할 일이 많지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우고자 하는 사명을 마음 속에 다잡고 있다. 특히 그는 평생 지켜온 ‘바른 목회’, ‘정직 목회’ 철학을 더욱 실천해가고 싶다고 했다.
“목회자는 바르고 정직해야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 앞에서 떳떳하기 위해서는 정직을 생명처럼 여겨야 가능합니다. 외적인 교회 부흥에 대한 욕망이 클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알곡 성도를 만드는 것이 저의 목회 신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그 일을 가능케 하실 것이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