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있는 사역으로 성도들에게 위로 주는 목회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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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있는 사역으로 성도들에게 위로 주는 목회할 것”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2.02.1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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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교회 함석종 목사 / 서울중앙노회 노회장

살아갈 희망조차 없을 때, “아들아 사랑한다”
“목회자의 삶은 기도, 최고의 동력도 기도여야”
풍성한교회 함석종 목사는 육신의 고통 가운데 부름을 받았고, 위기 때마다 만나주신 하나님을 따라 목회의 길을 끝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풍성한교회 함석종 목사는 육신의 고통 가운데 부름을 받았고, 위기 때마다 만나주신 하나님을 따라 목회의 길을 끝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떨어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척추는 으스러지고 목뼈까지 다쳐 전혀 걸을 수 없었다. 의사에게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어렵다는 말까지 들었다.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함석종 목사(풍성한교회)는 대기업 자동차회사를 다니다 어느 날 고향 교회 건축을 돕기 위해 철거 현장을 찾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멀어졌던 교회지만, 지인의 부탁을 받고 잠시 들렀다가 큰 사고를 당했다. 

“높은 곳에서 철거 작업을 돕는데, 후배가 위험해보여 제 안전밧줄을 주었어요. 그 순간 떨어져버린 겁니다. 아파트 3층 높이에서 떨어졌으니 부러지지 않은 뼈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치료도 안 되고 통증이 너무 심해 무척 난폭해지기까지 했었지요.” 

더 이상 살아야 할 의미가 없었다. 조용히 혼자 삶을 정리하려고 했다. 죽기로 결심한 29살 청년 함석종은 전라북도 정읍의 조그만 기도원까지 험한 길을 기다시피 해서 찾아갔다. 삶을 뒤돌아봤더니 후회뿐이었다. 하나님을 향해 욕도 해보았다. 그래도 기도원에 왔으니 집회에 참석해 설교라도 한번 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거죠. 기도원에서 시키는 대로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기도를 했습니다. 서럽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해서 참 많이 울었어요. 한참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아들아!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는 음성이 두 번 들리는 겁니다.”

그 이후 기적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그의 마음에 은혜가 넘쳐흘렀다. 은혜와 기쁨을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신학을 공부하게 됐다. 은사 목사님을 도와 부흥 집회를 따라다니며 말씀을 전했다. 치유의 은사가 임하자 아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얼떨떨했지만 이후 한참 동안 열심히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행복하게 사역에 임했다. 그러다 더 깊이 있는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백석대 신대원에 진학했고, 방배동산에서 소중한 목회 동역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병 아니니 염려하지 말아라”
순탄할 것 같았던 그의 목회에 또 한 차례 위기가 찾아왔다. 갑자기 류마티스 관절염이 심하게 발병한 것이다. 한번 통증이 시작되면 방에서 데굴데굴 구를 정도였다.  

“우리 아이가 백일쯤 됐을 때인데 아주 낮은 턱에 걸려 아이를 안고 굴러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관절염 통증이 도진 순간이었죠. 최선을 다해 보호했지만, 그 순간 화가 나는 거예요. 하나님만 보고 사역을 시작했으니까 꼭 낫게 해주셔야 한다고 떼를 썼어요.”

기도하면서 다행히 통증은 가라앉고 회복됐다. 다시 목회를 시작했는데, 예전처럼 온 힘을 기울이지는 못했다. 또 아플까봐 겁도 났다. 기도하는 목사가 아프면 덕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서 위축됐다. 그러다가 우연히 클레이 사격을 접하게 됐다.

“취미로 사격을 시작했는데 성적이 잘 나오는 겁니다. 도민 체전에서 우승까지 하고 신문에도 기사가 나면서 여기저기 선수로 초빙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십여년을 스포츠에 몰두하면서 건강이 참 많이 좋아졌는데, 마음 한켠은 목회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담이 자리잡고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경고하는 음성을 애써 모른 체 했다. 이 정도면 목회도 제 몫을 다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스스로 위안했다. 시청 초빙선수로 대회에 나간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대회를 마치고 검진을 받은 병원에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췌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췌장이 좋지 않은 집안 내력 때문에 겁이 덜컥 났다. 다시 육신의 아픔이 시작됐고, 쌀 한 톨 넘기지 못할 정도로 건강은 악화됐다. 겨우 고구마 한쪽 삼킬 수 있어 연명할 정도. 함 목사가 ‘췌장암’이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는 증상들이 나타났다.

“구급차를 타고 세브란스병원까지 가면서, 아내에게 어떤 연명 치료도 하지 않겠다고 유언을 했습니다. 결국 죽을 건데 나 때문에 온 가족을 위기로 몰 수 없었어요.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아내에게 예배당에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이불을 깔고 작정기도를 하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나와요.”

회개하고 기회를 구했다. 서럽기도 하고, 목회를 더 잘하고 싶어 펑펑 울었다. “사명이 남았다면… 주님이 시간을 허락하신다면… 한번만 생명을 연장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번에도 하나님은 기도 중에 음성을 들려주셨다. “함 목사야, 아무 염려하지 말아라.” 

몸무게는 11킬로그램이 빠져 있었지만 검사결과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 검사에서 보였던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또 고쳐주셨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몸무게 11킬로그램을 회복하는 데 10일이 걸리지 않았다. 

성도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교회
함 목사는 이후 이탈리아에서 특별 제작해 들여온 총까지 모두 처분했다. 하나님과 약속한대로 목회에 전념하면서, 지금까지 풍성한교회를 탄탄하게 일구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홍대 인근으로 교회를 이전하고 새롭게 터를 마련했다. 함 목사는 목회의 최고 동력을 기도에서 찾았다. 뜨겁게 만나주셨던 첫 사랑의 기억도 기도의 현장이었고, 방배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뜨거운 기도의 역사를 세우도록 하셨다. 

“목회자의 삶은 기도여야 합니다.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기도에 더 전념하려고 합니다. 여호수아가 열심을 내었지만 결국 하나님은 더 큰 계획으로 이루어가셨잖아요? 하나님은 재밌고 신나는 목회를 할 수 있도록 계획하시고 지금껏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현재 함 목사는 서울중앙노회 노회장으로 섬기며 노회 산하 교회들을 위한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또 교단을 향한 깊은 애정으로 상비부서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총회 일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그래도 목회가, 양떼가 최우선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균형을 잃지 않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과거에는 목표를 향해 몰아치는 목회를 했다면 이제는 사랑하는 교인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교회를 이루어가려고 합니다.” 

갖은 역경을 겪으면서 풍파도 많았다. 육신의 고통을 겪으면서 목회의 위기를 겪는 것도 수차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함석종 목사를 지금까지 이끌어오셨다. 안정된 가정을 지켜오도록 하시고 두 아들을 성실한 직장인으로, 촉망받는 모델로 세워주신 것도 감사할 뿐이다. 이제 교회 이전을 마친 풍성한교회. 함석종 목사는 또 다시 새로운 은혜를 부어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묵묵히 기도의 목회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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