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종료아동’ 크로스핏 국제 코치로 양성
돌봄 필요한 청소년들 자립 돕기 위해 시작
아이들의 멘토로 하나님께로 인도하길 꿈꿔
“크로스핏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운동은 스쿼트입니다. 스쿼트 자세만 제대로 알고 잘 따라 해도 다양한 운동을 잘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바벨을 등 위의 승모근에 올려놓고 앉았다 서기를 반복하며 백스쿼트를 진행하는 노고은 대표(사회적협동조합 엎드림)의 탄탄한 몸매가 돋보인다. 매서운 한파 소식이 무색하게도 덤벨과 메디슨볼, 케틀벨 등의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운동하며 땀을 흘리는 회원들로 인해 체육관의 열기가 뜨거웠다.
수도권 곳곳에 눈발이 날린 지난 18일 마포역 인근에 위치한 ‘무한크로스핏’에서 노고은 대표를 만났다. 크로스핏 시설 ‘무한크로스핏’을 운영하는 그는 2019년 사회적협동조합 ‘엎드림(UpDream)’을 설립하고 보호종료아동들의 멘토이자 자립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보호종료아동’의 멘토 다짐
‘엎드림’은 아동양육시설 및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건강한 자립을 돕기 위해 설립된 협동조합이다. 크로스핏과 협동조합의 조합이 조금은 생소한 가운데, 20여 년의 트레이너 경력을 가진 그가 이 일을 시작한 배경이 궁금했다. 노 대표는 “가정위탁이 종료되거나 아동복지시설의 퇴소를 앞둔 ‘보호종료아동’을 대상으로 크로스핏을 트레이닝하고 코치로 양성해 궁극적으로 이들의 건강한 자립을 돕기 위해 설립된 단체”라고 밝혔다.
그가 보호종료아동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하다가 만 18세가 되면 정부 지원금 500만 원을 들고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청소년들의 막막한 현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는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위해 크로스핏 수업을 다니면서, 이들과 친해졌고 자연스럽게 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성추행이나, 폭력 등 자신들이 경험했던 상처에 대해 너무나도 담담하게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욱 충격적이었다”고 회고했다. 맨몸으로 세상에 던져져 홀로 싸워야 하는 아이들을 위한 멘토가 되어줘야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보호종료아동’들은 미성년자 신분으로 자립 기반 없이 사회에 나와 단돈 500만 원으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한다. 최근 들어 이들을 향한 사회적 관심만큼은 커지고 있지만, 제도적 지원은 여전히 미비한 상태다. 노 대표는 “물론 500만 원으로 나름의 계획을 갖고 잘 살아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경제적 개념이 없는 아이들의 경우 성형수술이나 게임을 해서 날리는 경우가 있다”면서, “어른들의 보호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아이들의 꿈을 업(UP)시키길”
노 대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이 가진 ‘운동’이라는 은사를 활용해 이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설립배경으로 그는 “여성 피트니스의 활성화를 장려하기 위해 지난 2013년 처음 ‘GIRLFIT’대회를 열었고, 후원업체의 지원물품을 기부금 마련을 위한 경매행사로 사용했다”며 “이를 통한 수익금 전액을 UN난민기구 및 홀트아동복지단체에 기부하면서 사회공헌활동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속적 대회를 통해 마련된 기부금을 더 의미있게 사용하고자 아동복지시설과 인연을 맺어 2017년부터 아동양육시설 내 운동시설을 설치함과 동시에 운동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아동양육시설 아이들의 현실적 어려움을 크게 절감했던 그는 2019년 사회적협동조합 ‘엎드림’을 설립했다.
특히 그는 “‘엎드림’은 아이들의 꿈을 업(UP)시킨다는 의미와 동시에,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면서 “법적으로 성인이 되면, 맨몸으로 사회에 나가야 하는 청소년들이 운동을 통해 건강한 정신을 기르고, 프로그램을 통해 먼저 작은 사회를 경험할 수 있게 돕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정기적으로 보육원에 방문해 3~40명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무료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운동에 자질이 있는 아이들을 선발해 기초교육부터 자격증/인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최연소 ‘크로스핏’ 코치 양성
그를 통해 현재까지 3명의 보호종료아동들이 크로스핏 코치로 배출됐다. 아동복지시설에서부터 노고은 대표의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아이들은 퇴소하자마자 스물 초반에 ‘크로스핏 코치’ 국제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최연소 크로스핏 코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난이도가 매우 높은 고강도 운동을 다루는 ‘크로스핏’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공식 자격증을 보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미국에서 인증하는 공식 국제자격증인 ‘크로스핏 CERT 1’을 보유해야 정식 크로스핏 코치로 활동할 수 있다. 그는 “같은 보육원 출신의 아이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고, 잠재력과 가능성을 잃지 않는 아이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이들을 통해 자극을 받고 운동을 시작한 아이들도 많이 있다”고 전했다.
“스쿼트 자세만 봐도 아이들의 자질을 테스트해볼 수 있다”는 그는 “처음에는, 왜소한 체격에 소심한 성격의 아이들도 운동을 한 이후에는 몸이 달라지면서 자신감을 갖추게 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도전의식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코치로서 이들을 트레이닝하면서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 대해 강조한다고 전했다. 노 대표는 “아이들이 운동을 가르치면서, 회원들 한명 한명을 귀하게 여기고, 성경과 심리적 부분에 대해 캐치해주는 것이 더 훌륭한 코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건강한 정신과 몸의 ‘어른’ 되길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피트니스 영역은 아이들의 육체적인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까지도 돕는 일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외부활동이 어려워진 요즘 그는 아이들과 함께 운동을 하는 인증샷을 올리며, 건강한 신체발달을 위한 도전과 자극을 주고 있다.
노 대표는 “생리학적으로 운동을 하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기분 나쁜 일이 있다 할지라도 운동을 하게 되면 금세 기분이 좋아지며, 우울증과 불안의 마음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가정’이라는 정서적 울타리가 없는 아이들은 스트레스 상황이 닥치면 술이나 게임 등의 유흥에 쉽게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는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과 신체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그는 방문상담, 생필품 지원, 주말 피트니스 수업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노 대표는 “현재 퇴소(예정) 청소년이 운동수업에 참여하고자 할 경우, 50%의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본인 부담금을 받는 것은 아이의 의지를 확인하는 차원”이라며, “대신 수업에 70% 출석할 경우 개인당 40만 원을 지원해 3~4회 이상 재등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밝혔다. 꾸준히 반복해야 운동의 습관이 잡히고, 아이들이 건강한 신체발달을 이룰 수 있기 때문.
이 과정에서 노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 한명 한명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는 “아이들과 밥을 먹고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고민과 삶을 듣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조언을 해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저 역시도 부족한 사람이지만, 아이들에게 본이 될 수 있도록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려 애쓰고 있다”며 “빚진 자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보호종료아동들의 멘토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어려운 점으로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인내해야 할 순간이 많이 있다. 특히 상식에서 벗어난 언행, 경험 부족으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인간적인 노여움과 분노의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을 통해 지난날의 나의 과거에서 끝없이 기다리며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됐다”면서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아이들에게 흘려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일에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보호종료아동’들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그는 “기댈 곳 없는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들어주고 공감해줄 어른이 필요하다”면서 “교회 청년부가 함께 운동을 배우고 익힌다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좋은 멘토와 멘티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의 바람에 대해 “아이들을 만날 때 먹고 싶은 고기를 마음껏 먹일 수 있으면 된다”며 웃음을 보인 그는, “우리가 씨를 뿌리면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 앞으로 행하실 일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