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 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한1서 4장 20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않는 크리스천은 없다. 가끔은 혹독한 현실에 부딪혀 원망 섞인 불평을 쏟아낼지 몰라도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배우자, 형제, 친구, 이웃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밉상도 한둘이 아니다. 어떻게 이렇게 몹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느냐고 항변하고 싶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단호하게 말한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지난주 소개한 1~4계명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면 5~10계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올해를 마무리하는 연중기획 결산 마지막 순서에서는 우리의 일상을 관통하는 5계명부터 10계명을 들여다봤다.
부모 공경이 인간관계의 시작
인간관계가 홍수처럼 넘치는 시대다. 휴대폰에 저장된 주소록에만 수백, 수천 명의 관계들이 거미줄처럼 엮여있다. 이 많은 인간관계 중 십계명은 가장 먼저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교훈을 시작한다. 부모를 섬기는 효도가 인간관계 중 가장 기본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5계명이 부모에 대한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강영안 교수(미국 칼빈신학교)는 “5계명은 부모에게 순종하되, 부모이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나아가는 발걸음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라며 “만일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한다면, 그것을 거부할 권리가 자녀에게 있다”고 설명했다.
5계명이 단순히 부모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5계명에 숨겨진 의미가 있다면서 “비록 ‘부모’라는 특정한 대상이 언급되고는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권위를 존경하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가르침을 주고자 하셨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살해당하는 인간의 존엄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은 십계명 중 가장 짧고 명료하다. ‘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얼핏 낯설기도 하지만 경제적 불평등으로, 험담과 따돌림으로 인간의 존엄이 상실되는 오늘날에는 6계명이 보다 넓게 적용된다.
글자 그대로 좁은 의미의 살인이 줄어든 대신 넓은 의미의 살인은 더 교묘하게 자행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변명하며 뱃속의 아기를 죽이는 낙태가 그렇다. 성경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고 증언하며 태아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격체임을 강조한다.
스스로를 죽이는 자살도 생각해볼 문제다. 특히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 당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만큼 주변에서 자살 징후를 눈치 채고 도움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성돈 교수(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대표)는 “생명의 가치관과 생명의 문화를 갖고 있는 교회가 나서서 죽음의 문화를 이겨낼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법이 인정한 ‘살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형제도 역시 예외가 되지 못한다. 개신교인 사이에서도 사형제도에 대한 의견이 갈리지만 그래도 폐지돼야 한다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문제를 인간이 만든 법으로 판단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런가하면 직접 목숨을 빼앗지 않더라도 6계명을 어기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악플’로 대표되는 ‘인격살인’이 바로 그와 같은 사례다. 요한일서 3장 15절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감추고 있는 성적 욕망
‘간음’이란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 외에 다른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이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결혼이라는 거룩한 제도를 파괴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좀 더 넓은 의미로는 모든 종류의 성적인 범죄도 음행이라는 차원에서 7계명에 포함된다.
특히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시각으로 인해 7계명을 범하기 쉬운 시대다. 손 안에 휴대폰을 이용해서도 손쉽게 음란물을 접할 수 있어서다. 송준기 목사(웨이처치)는 “포르노를 보면 무엇보다 영성이 망가진다. 포르노를 보고 예배와 기도가 될 리가 없다.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채워질 수 없는 불편한 욕망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어느 새부턴가 사라진 ‘순결 서약식’도 7계명과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백소영 교수(강남대 기독교학과)는 “혼전순결에 관해 이야기할 때 특정 신체 부위의 문제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순결이 무엇인지를 성찰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적인 죄’를 얘기할 때 동성애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에는 동성애도 ‘성적인 취향’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하지만 장동민 교수(백석대)는 “성경은 동성애를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역리라고 말하고, 부끄러운 욕심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탐욕이라는 이름의 도둑질
치안이 좋기로 유명한 우리나라다. 소매치기는 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림자 뒤에 숨은 도둑질은 그보다 심각하다. 잊을 만 하면 횡령과 배임, 논문 표절과 탈세가 뉴스에 오르내린다.
물질을 훔치는 것뿐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거나 속여서 판매하는 것도 도둑질에 해당된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보다 8계명을 잘 지켜야 할 교회가 찬양 음원이나 악보에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당연한 듯 무료로 사용하는 것은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할 문제다.
성경은 노력 없이 큰 재물을 얻으려는 불로소득과 한탕주의에도 단호히 선을 긋는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토지독점과 부동산 불로소득은 최악의 도둑질”이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물자를 얻는 이가 있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일을 하면서 자기 몫을 받지 못하기 마련”이라고 역설했다.
‘말’에 대한 9계명
인류의 죄는 거짓말로부터 시작됐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거라던 뱀의 거짓말이 타락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거짓말의 유혹은 달콤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다.
9계명을 더 넓게 해석하면 ‘말’에 대한 계명으로 볼 수 있다. 칼빈은 “9계명에서 말하는 거짓증거는 곧 모든 험담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웃을 비방하는 것과 명성을 떨어뜨리는 것 모두 9계명을 범하는 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의의 거짓말은 어떨까. 성경에는 바로의 명령을 어기고 모세를 살린 산파,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준 기생 라합, 압살롬에게 쫓기던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를 구해준 여종처럼 선의의 거짓말을 했던 사례가 등장한다. 강영안 교수는 “세 경우의 공통점은 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거짓말이었다는 점”이라며 “생명을 살리기 위한 거짓말은 오히려 믿음의 결과로 평가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모든 죄의 뿌리, 탐심
십계명의 대미를 장식하는 열 번째 계명은 탐심을 금한다. 그런데 이 탐심은 다른 아홉 계명을 범하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성에 대한 욕심으로 간음을 범하고, 재산과 명예에 대한 욕심으로 도둑질과 살인, 거짓말을 저지른다. 이는 곧 탐심을 제어하는 것이 곧 십계명을 잘 지키는 길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무조건 욕망과 소유를 버리는 것이 10계명을 잘 지키는 길은 아니다. 김동호 목사는 “성경은 절대 무소유를 권장하지 않는다. 소유는 많든 적든 우리를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이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고 한 것처럼 소유를 초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관건은 비움이 아니라 채움에 있다. 장동민 교수는 “성경의 가르침은 욕망을 제거하라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고상한 욕망을 가지라는 것”이라며 “즉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모든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궁핍을 능가하는 기쁨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