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성령의 역사가 담긴 사도행전 3권의 만화로 담아
‘슬램덩크’‘드래곤볼’ 떠오르게 하는 흑백…‘몰입’에 강점
최근 주일예배 설교 본문으로 사도행전이 나왔다. 마침 얼마 전 이무현 작가(학익감리교회 집사)로부터 선물 받은 신간 ‘만화 사도행전’(생명의말씀사)을 막 읽은 터라 설교 속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함께 모여 유다를 대신할 새로운 제자로 맛디아를 뽑는 장면,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는 장면 등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총 세권으로 이루어진 ‘만화 사도행전’을 그린 지난 7년 동안 이 작가는 예배 설교에서 사도행전을 만나면 “바울이 여기서 그랬지, 스데반이 여기서 죽었지”하면서 그냥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 작가와는 지난 5월 광화문 생명의말씀사 카페에서 만났다. 두 시간 가량 이 작가의 신앙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신간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이 작가가 가진 기독 만화에 대한 생각, ‘만화 사도행전’을 그리기까지의 삶의 여정 등도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인터뷰의 감동이 조금이라도 많은 독자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동안 사도행전을 어렵게 느껴온 독자라면 이번 기회에 꼭 ‘만화 사도행전’을 통해 복음과 성령의 역사를 흥미롭게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이끌리듯 접어든 길
인하대학교 일어일문과를 나온 이무현 작가는 그저 만화를 보고 그리기 좋아하던 청년이었다. 대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교회에 새로 부임한 담임 목사가 그를 불렀다. 미국의 프랭크 와든이라는 목사가 개발한 ‘트리니티 성서연구’를 목회에 접목하기 위해 만화 삽화가 필요한데, 맡아달라는 용무였다. 전공자도 아니었지만, 마침 캠퍼스가 교회와 가까워 자주 들르기 부담이 없었고, 담임 목사로부터 직접 성경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감당하기로 했다.
이를 계기로 장장 15년을 설교 삽화에 매달리게 됐다. 프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건 서른 살 무렵 교회 청년과 결혼을 하면서부터다. 가족을 부양하려면 직업이 있어야 하는데 지난 10년 그가 한 일이라곤 성경을 그림으로 그린 것 밖에는 없었다. 달리 고민할 것도 없이 그렇게 전문 작가가 됐다. 감사하게도 교회에서는 그를 프로 작가로 대접해 사례비를 줬다. 이밖에 여러 교단의 아동 공과, 교계 언론 만평 등 크고 작은 일들도 종종 들어왔다.
그런 와중에 국내 한 기독 출판사에서 성경만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교회에서 사도행전 작업을 마쳤을 무렵이었다. 계약금은 많지 않았지만, 이로 인해 ‘만화 사도행전’을 그리게 됐다. 1권까지는 어떻게 마무리가 됐지만 여유 재정이 바닥나면서 집중해서 그릴 수가 없게 됐다. 다행히 교회에서 매주 작업했던 예배삽화와 트리니티 성서연구 프로젝트가 있었고, 교단들의 공과작업이 있었기에 한 달 한 달을 버티며 살아갈 수 있었다.
3년 전, 그를 기독만화의 길로 이끌었던 목사님이 퇴임하면서 교회 사역이 정리됐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로 사도행전에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마침 지난해 ‘만화 천로역정’으로 베스셀러를 차지한 최철규 집사가 “그동안 그린 것을 버리지 말고 책으로 내라”고 조언했고, 생명의말씀사와 연결되면서 3권 전권을 출간하게 됐다.
흑백만화의 힘
만화 사도행전은 3권 모두 흑백으로 구성됐다. 이 작가는 흑백만화에 대해 “마음 안에서 꽃을 피우는 장르”라고 표현했다. 한국은 웹툰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컬러 만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만화 강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는 여전히 대작들이 흑백으로 제작되고 있다. 이 작가는 “한국에서 흑백만화가 인문학적으로 풍성해지기 전에 컬러로 순식간에 넘어갔다”라며 “일본에서는 계속해서 흑백 만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몰입도 측면에서 월등하게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컬러만화의 경우 화려하지만, 동시에 이 화려함으로 인해 독자들이 이야기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는 게 이 작가의 설명이다. 특히 성경이라는 스크립트(대본), 글과 그것을 이해하도록 돕는 ‘그림’이라는 경계 사이에서 사도행전 같은 서사의 내용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통로로는 ‘흑백만화’가 제격이라는 판단이 섰다.
이 작가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즐겨 봤던 ‘슬램덩크’, ‘드래곤 볼’ 등의 작품을 언급하면서 “지금 눈을 감고 그 작품들을 생각하면 명장면이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어 “이게 바로 흑백만화의 힘”이라며 “성경만화에서도 슬램덩크나 드래곤볼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흑백만화를 보며 자란 3040 교인들 사이에서 성경공부의 열기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특히 해당 세대가 지나치게 ‘큐티’ 위주의 경건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입력된 것 이상의 결과물이 나오기 어렵다. 배경지식 없이 골방에서 묵상만 하기보다 역사적 지식을 갖추는 것이 신앙생활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만화를 통해 성경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최고의 성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바울의 심정, 누가의 의도 등이 읽는 사람들 안에서 꽃을 피운다면, 그들이 초대교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것”이라며 “그게 바로 종교개혁가 루터와 칼빈이 의도했던 것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누가의 마음과 통하다
이 작가는 사도행전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사도행전을 쓴 누가의 마음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100년 후에도 읽힐 수 있는 작품이 되도록 진지하게 연구했고, 사력을 다해 그렸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시력이 현저히 나빠졌다. 그 노력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긴 탓일까. 만화책임에도 불구하고 ‘만화 사도행전’은 온라인 서점에서 ‘성서연구’의 ‘신약학’ 카테고리로 분류되고 있다.
이 작가는 자신이 연구한 사도신경 속 바울과 저자 누가에 대해 표현하면서 “두 사람 모두 굉장히 겸손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소개했다. 특히 바울은 서신을 성경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을법한 인물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 만약 누가가 바울더러 ‘자네의 이야기를 적어서 후대에게 남겨야겠다’고 했다면 바울은 ‘그러지 말라’고 했을 것이라는 게 이 작가의 생각이다. 공교롭게도 바울이 죽은 뒤 누가는 사도들의 행적이 분명한 진실이었음을 알리기 위해 역사적 관점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그 안에 자신은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사도행전 안에는 저자 누가에 대한 설명을 찾기 어렵다. ‘의사였을 것이다’, ‘디도의 삼촌이었을 것이다’ 등 후대의 해석이 있을 뿐이다.
이 작가는 “후대에 기록을 전하고 싶었던 누가의 마음처럼 100년 뒤 다음세대에게도 읽히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며 “그리고 훗날 천국에 갔을 때 누가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인사 나누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무현 작가가 이 작품을 그리는데 걸린 시간만 무려 7년이다. 이 기간은 이 작가의 어머니가 4개의 암으로 투병을 한 기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가와 가족들은 죽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했다. 만화 사도행전에 신앙과 구원에 대한 진지하게 성찰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도 이때문은 아닐까.
한편 ‘만화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부터 이방인 복음 전파를 다룬 1권과 야고보의 순교부터 바울의 2자 선교 여행을 다룬 2권, 바울의 3차 선교여행부터 로마에서의 복음 전파를 다룬 3권으로 구성돼 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김영호 교수(신약학)는 “이 책은 성경을 처음 대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사도행전의 내용을 머릿속에 찬찬히 그려 보며 행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서가 될 것”이라며 “성경을 많이 통독한 이들에게는 사도행전을 더 깊이 공부하도록 이끄는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추천사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