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젊은이의 진취성과 이상을 위해 분투한 푸른 눈의 야구인
독자 여러분, 이 이름 들어 보셨어요? 사실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꽤 유명한 이름입니다. ‘한국근대 체육의 아버지’라고 불려질 정도니까요. 누군지 같이 생각해 보실래요? 이 사람이 한국에 들여온 스포츠 종목이 꽤 있어요. 스케이팅, 복싱이 이 사람을 통해 소개되었어요. 아직 감이 안 잡힌다고요. 농구도 이 사람이 소개했고, 야구도 이 사람이 소개했어요. 이제 어렴풋이 떠오르는 이름이 있으시죠?
바로 ‘필립 질레트’ 입니다. 사실 그의 한국 이름이 ‘길례태’예요. 야구에 관심 있는 분은 ‘질레트’라는 이름을 거의 알고 있고, 선교사라는 사실도 꽤 알고 있어요. 질레트 선교사의 이름이 서울 고척 스카이돔 야구장에도 ‘야구 역사의 벽’이라는 조형물로 떡하니 새겨져 있거든요. 기독교인이 입장에서 ‘선교사’라는 호칭이 빠져 아쉬울 수 있지만, 저는 한국 근대 사회에 일조한 기독교 선교의 한 장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함이 들기도 해요.
필립 질레트 관련 이야기는 영화로도 소개되었어요. ‘YMCA 야구단’ 보셨어요? 김혜수, 송강호, 황정민, 김주혁 등의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로, 일제시대, 황성기독청년연맹(황성 YMCA)에서 야구를 매개로 벌어진 에피소드를 토대로 만들어졌어요. 영화에서는 여성 신지식인(민정림, 김혜수 역)이 야구 코치 역할을 하며 팀을 이끌죠. 하지만 실제로 야구를 가르친 이는 여성 신지식인이 아닌 길례태 선교사였습니다.
영화에서 민정림(김혜수)이 한 역할은 사실 길례태 선교사가 수행한 일인데요. 그는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 활동을 통해 조선 청년들이 힘을 잃지 않도록 했어요. 이런 사실은 그가 1910년에 보낸 ‘코리아리포트’에서 잘 드러납니다.
“거의 모든 경기가 야외에서 치러지고 샤워 시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체육부와 실내체육반에 등록된 선수는 234명에 이른다. 한국 최초의 팀 YMCA 야구팀은 선교사들과 한국 내 거주하는 미국인들로 구성된 팀과 두 차례 경기를 가져 1승1무를 기록했다. 이와 같은 체육 운동이 갖는 의의는 이 나라 젊은이들이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운동경기를 통해 진취적이고 새로운 이상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_야구100년 인물열전(1) 필립 질레트, 고석태 기자, 조선일보
보고서에서 보여지 듯 일본 식민 지배 속에도 스포츠를 통한 꿈, 진취성을 조선의 젊은이에게 고취시키려 했던 필립 질레트. 그는 선교 사역의 다른 적용을 우리에게 보여줬어요. 교회, 학교, 병원을 세우는 사역을 통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사역 외에도 민족의 울분을 토해내고 젊은이의 기개를 함양시키는 일 역시 선교사역이라는 점을 보여 준 건 아닐까요?
한번 상상해 보세요. 1905년 길례태가 들여온 야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나라 잃은 청년들이 일본인과 경기하는 상황을요. 조선보다 앞선 1870년대 미국에서 야구를 받아 들여 이미 앞선 기술을 갖췄던 일본팀과의 경기에서 어떻게든 승리하고자 분투하던 조선의 젊은이들, 그리고 그들을 지도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며 힘을 키워가도록 이끈 푸른 눈의 한국인 길례태 선교사의 열정을 그려 보세요.
21세기 일본과 대등한 경제 규모, 문화 콘텐츠 수출이라는 쾌거를 당연시여기는 우리지만, 실제 길례태 선교사와 조선 청년이 분투하며 잃지 않았던 그 기개가 오늘의 현실의 밑거름이 된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길례태 선교사의 사역을 보며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교회와 선교사역은 이 땅의 젊은이가 아픔과 고통 가운데 기개를 잃지 않도록 용기와 힘을 주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 생존과 자가당착에 빠져 젊은이를 이용하고 있는지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