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동안 나는 츠빙글리의 저서를 읽고 글을 쓰면서 강력하게 성령의 역사에 빠지게 되었는데, 이는 츠빙글리의 성령론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인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2. 츠빙글리의 성례 신학은 루터와의 사이에서 긴장 가운데 수 차례 다듬어지고 정교해졌습니다. 로마교회의 화체설, 루터의 공재론에 츠빙글리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츠빙글리는 승천 후 주님은 우리를 떠나 하나님 우편에 계시기에 현장 교회가 행하는 성찬의 빵과 포도주에 주님이 육적으로 함께 한다는 공재론은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성찬에서 강조할 것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믿느냐라는 점입니다. 이미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역사적 구원을 확실히 믿고 고백하며, 그 몸된 교회에 참여한 성도들이 성령의 임재로 성만찬을 통해 교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건을 성령의 인도로 받아들이고 믿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3. 츠빙글리는 공공신학자입니다. 성령의 신학자가 사회참여적 공공신학자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신학이든지, 아니면 조금은 메마른 이성적 공공신학이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츠빙글리는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습니다. 루터와는 다르게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은 신앙개혁뿐 아니라, 모든 삶의 개혁이어야 했습니다. 교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하나님을 믿고 따른 사람의 모든 삶을, 그들이 속한 세상을 바꾼다고 확신했습니다. 세상이 죄악으로 타락하는 것은 근원에 영적 삶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츠빙글리는 경제, 사회, 가정, 교육, 정치 등의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 말씀 성경을 기준으로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목사와 정치가는 부름에 있어서 다르기에, 서로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츠빙글리는 부를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츠빙글리는 그 부를 가진 자가 억지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나눌 것을 요청합니다. 이자율도 최고 5% 이상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이자 없이 돈과 재화를 가난한 자에게 꾸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7세기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위에서 시작한 한국교회는 역사적 근원을 칼빈(1509~1564)까지 올라가는 데는 성공한 것 같습니다. 거기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개혁교회의 아버지이며, 2대 종교개혁자 개혁신학의 뿌리인 츠빙글리(1484~1531)를 알고 가까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츠빙글리는 이른 47세에 가톨릭 군병들에게 목 베임을 당해 죽었습니다. 그가 종교개혁을 위해 쏟은 시간은 12년이었습니다. 빨리 세상을 떠난 것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츠빙글리의 신학은 개혁신학의 정체성을 넉넉히 보여줍니다. 2년여간 츠빙글리를 소개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개혁신학의 뿌리, 츠빙글리를 읽다』(세움북스, 2021)를 작은 열매로 맺힐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로 함께 한 「기독교연합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Soli Deo Gloria!
주도홍 교수의 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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