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니스트 유재후의 단순 에세이 아닌 정통 음악해설집
신간 ‘LP로 듣는 클래식-유재후의 음악이야기’(도서출판 등/296쪽/17,500원)는 반세기 전 LP시대의 명반을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지만 LP와는 무관하게 클래식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 아니 관심이 전혀 없었던 독자들에게까지 음악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작곡가들의 굴곡진 삶과 작품에 얽힌 다양한 사건들, 그리고 명연주가들의 숨은 이야기들이 영화나 소설, 그리고 유럽에서 오래 살았던 저자의 여행담들과 어우러져 있는데다, 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유려한 문장력으로 인해 하나의 재미있는 단편소설집을 읽는 듯하다.
그렇지만 클래식음악 감상하는 것이 쉽지 않듯이 결코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한번 읽고 난 후 책장에 넣어두는 일반 에세이집이 아닌, 음악을 들을 때 항상 가까이 두고 싶게 만드는 정통 음악해설집이며, 클래식 입문자에게 뿐 아니라 본격 에세이집을 원하는 음악애호가들 모두에게 만족감을 주는 클래식 음악이야기 책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LP를 접한 순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한창 사춘기 시절인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신문사에 다니고 있던 형으로부터 허접한 야외전축portable turntable과 소위 ‘빽판(해적판)’으로 불렸던 LP 2장을 물려받았다. 음악을 접할 수 있는 매개체로는 라디오 밖에 없었던 나에게 턴테이블이 달려있는 그 야외전축은 최고의 장난감이자 사춘기 열정을 달래줄 수 있는 훌륭한 도구였다. 처음으로 내 소유가 된 그 LP 2장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였는데, 얼마나 되풀이해서 많이 들었는지 어느 순간엔 잡음소리가 음악소리보다 커져서 더 이상 듣기가 괴롭기도 했다.”
저자 유재후(65)는 서울대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외환은행에 입사, 파리 지점장, 경영그룹장 등을 역임했다. 은퇴 후 클래식 음악 관련 글쓰기, 강연 등을 하는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Part 1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art 2는 ‘해질 무렵 흥얼거리고 싶은 노래들’, Part 3는 ‘집시들의 자유와 열정, 그리고 랩소디’, Part 4는 ‘죽음 너머 더 큰 행복을 향한 열망’을 주제로 다양한 음악들이 소개되고 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LP의 탄생과 발전’
LP는 ‘Long Playing 레코드’의 약어다. 소리를 저장했다가 나중에 다시 듣는 행위가 지금은 너무 쉽고도 당연한 일이지만, 1877년 에디슨이 처음으로 축음기phonograph를 발명해 제품으로 내놓았을 때 당시 사람들은 그 획기적인 발명품에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에디슨의 축음기에 사용되는 음반은 지금과 같은 납작한 원반형이 아닌 원통형이었고, 음질은 좋았으나 구조상 다량 복제가 어려운 단점이 있었기에 시장성은 없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887년, 베를리너라는 독일 출신 미국이민자가 지금의 모양과 같은 원반disc에 소리를 기록하고 이를 재생하는 ‘그라모폰Gram-mophon’이라는 음향기기를 발명한 이후, 아날로그방식의 레코드는 1982년 디지털 매체인 CD가 등장하기 전까지 무려 1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많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음향적인 완성도를 높여갔다.
SP(standard playing)로 통칭되는 초기의 음반은 셸락shellac이라는 천연수지로 만들었는데, 음반 한 면에 수록할 수 있는 시간은 4분여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30여분 가량 소요되는 교향곡이나 협주곡 한 곡을 수록하기 위해서 4장의 음반, 그리고 전곡 감상에 70분이 넘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수록하기 위해서는 음반 7~8장을 담는 사진앨범 같은 두툼한 포장이 필요했다.
그 후 무려 50여년이 지난 후인 1948년, 미국의 콜럼비아사에서 염화비닐PVC로 제작한 LP를 개발하면서 레코드산업은 획기적인 진보를 하게 되었다. 한 면 재생시간이 30분가량으로 늘어나면서 대부분의 클래식 곡을 한 면 또는 한 장에 수록할 수 있게 되었고, 음질도 SP에 비해 크게 향상된 것이다. 그리고 약 10년 후인 1957년에는 스테레오로 녹음하는 기술까지 개발되었고, 이후 3~40년간 LP레코드의 전성기가 지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