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우리나라에 오디션 프로그램 광풍이 불었던 적이 있습니다. 엠넷에서 시작한 슈퍼스타K가 두 시즌 연속 성공을 거두면서 지상파 방송 3사도 각자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곤 했습니다. 당시 케이블 방송은 지상파보다 하위 방송이란 생각이 지금보다 더 지배적이었는데, 지상파 방송국들이 ‘케이블의 뒤꽁무니를 쫓아간다’는 평가를 감수하게 할 만큼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기는 엄청났습니다. 일반인에서 하루아침에 대박 스타가 된 사람들이 브라운관을 가득히 채웠고, 그에 맞추어 악기 판매량과 실용음악과 진학 희망자 수는 폭증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오디션의 열기도 마치 엊저녁의 잔치처럼, 그 기억만 남은 채 바람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엠넷은 4년 전에 마지막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2016’을 내보냈고, 마지막 회 시청률 1.1%라는 처참한 기록으로 그 끝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 하나를 제외하고요. 그것은 바로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입니다.
‘쇼미더머니’는 다음다음 달인 10월 2일 무려 아홉 번째 시즌의 첫 방송을 앞두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영향도 쇼미더머니의 열풍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국민 오디션이 몰락한 이때, ‘쇼미더머니’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답을 ‘이야기’에서 찾았습니다.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참가자가 자신이 만든 작품으로 경연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래하는 기술’을 볼 순 있지만, 각 참가자의 이야기나 가치관을 작품에서 찾을 수 없지요. 하지만 힙합에서는 다른 사람의 랩을 하는 것을 ‘대필’이라 하여 굉장히 비겁한 행동으로 치부합니다. 잘 쓰든, 못 쓰든, 자신이 직접 쓴 이야기를 들고 와야지만, 최소한의 입장 조건을 만족하는 겁니다.
그래서 ‘쇼미더머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개개인의 삶의 가치관, 살아 온 이야기, 갈등, 기쁨, 분노, 감정의 폭포 속에서 작품과 동시에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쇼미더머니’를 지금까지 이끌고 온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요즘 청년들이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글의 형태로 담아내는 경우를 참 찾기가 힘듭니다. 그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하나만 짚어보자면 스낵 문화 (Snack Culture)의 영향으로 짧은 단위의 문화만 소비하는 습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 안에 삶의 서사를 담기는 어려울 것이고, 그래서 말초적인 즐거움이나 웃음이 주된 콘텐츠가 됩니다. 그렇기에 진중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문화를 생산해 내는 것 또한 익숙지 않죠. 그리고 이런 시도 자체가 학술적 능력 혹은 관심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런 문화의 흐름과 무관하게 소위 ‘공부 안 했던’ 청년 집단의 철학이 담긴 글은 원래 보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런 데 반해, 힙합에서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다양한 계층의 청년이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저항적인 힙합 문화의 비호 아래 자신의 이야기를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뱉어냅니다. 그 어떤 학술지, 연구에서도 볼 수 없는 날 것의 이야기가 힙합 속에는 있습니다.
그래서 때론 감동적이고 때론 추하고 때론 당황스럽고 때론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 어떤 글보다 진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년들의 가치관을 알고 싶다거나, 그들을 주 사역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반드시 힙합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그들을 1:1로 마주하고 앉더라도, 눈치나 체면 때문에 드러내지 못하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마치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혹은 비공개로 해 둔 SNS의 글을 훔쳐보듯, 힙합의 가사에는 그들의 가장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힙합을 통해 청년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 가사 속에서 그들의 가치관, 관심사, 결핍을 깊게 들여다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오늘의 추천곡 : Gone - JUS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