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는 이슈 목록 상위권에서 도무지 내려오질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아성을 위협할만한 뜨거운 감자가 최근 떠올랐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부동산 문제다. 부동산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지지율마저도 쥐고 흔들었다.
해결되지 않는 부동산 문제로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골머리를 앓는다.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몇몇 이들이 ‘토지 공개념’을 제시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선 공산주의가 아니냐는 꼬리표가 따라 붙는 것이 현실이다. 보수 성향이 강한 교회에서도 반발이 거세다.
하지만 정작 성경은 ‘토지 공개념’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될까. 성경에 기록된 ‘희년’은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 하에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토지에 대한 권리를 나눈다. 다행히도 성경이 말하는 토지 정의를 이 땅에 현실로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크리스천들이 존재한다. ‘희년함께’는 그 최전선에 선 단체다.
희년운동은 ‘건강한 자본주의’
희년함께의 시작은 예수원을 설립한 대천덕 신부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경적 토지 정의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대천덕 신부는 소수의 기독교 경제학자와 함께 1984년 한국헨리조지협회를 설립한다. 성경의 토지 개념을 학문적으로 가장 잘 설명한 경제학자가 헨리 조지라고 봤기 때문이다. 한국헨리조지협회는 이후 ‘성경적 토지 정의를 위한 모임’(성토모)으로 이름을 바꾼다.
‘희년함께’라는 이름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2010년부터다. 성토모에선 학자 중심으로 기독교적 토지 정책에 대한 연구에 매진했다면, 희년함께로 개칭하면서부터는 부동산 문제의 현실적 해결로 눈을 돌린다. 2014년부터 희년함께와 동행해온 김덕영 사무처장은 ‘희년’이라는 이름에 성경적 토지 정의 정신이 축약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고대 국가에도 왕이 바뀌면 백성들의 부채를 탕감해주곤 했습니다. 어수선한 상황에 민중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정치적 의도였죠. 하지만 이스라엘의 희년은 달랐습니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항구적인 제도였어요. 무엇보다 ‘우리는 다 거류민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토지의 주인’이시라는 정신이 담겨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토지에 주목한 이유는 뭘까. 농경·유목 생활을 했던 고대인들에게 토지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토지가 없이는 최소한의 생계를 영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평등하게 돌려주는 희년에는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인간 존엄의 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농경 사회를 넘어 산업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지만 부동산과 인간 존엄의 문제는 여전히 현실과 절절히 맞닿아 있다.
“같은 인테리어, 같은 브랜드의 아파트라도 강남과 지방은 집값이 확연히 다르죠. 그 차이는 어디서 나올까요? 정답은 땅의 지대 차이밖에 없습니다. 땅만 가지고 있으면 얻는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을 높이고 노동에 대한 세금을 낮추는 것, 거저 얻는 수익이 아닌 땀 흘려 얻는 수익에 보람과 가치를 주는 것. 이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의 건강한 실천이고 인간의 존엄에 대한 존중입니다.”
좌절한 청년에게 ‘희년’을!
사실 이런 정신을 삶으로 보여줬던 이들은 다름 아닌 초대교회의 성도들이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초대교회 이들은 자신이 가진 재산을 거리낌 없이 내놓고 공유했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작정 가지고 있는 토지를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희년함께는 부동산 문제와 연계된 청년부채 문제를 주목했다.
한국사회의 가계 대출 규모는 무려 천오백조 원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사회적 기반을 아직 갖추지 못한 청년들은 특히 더 어깨가 무겁다. 이자율이 20%를 넘는 고금리 대출을 이용한 청년들은 매달 이자를 갚는 것만도 벅찬 것이 현실. 이런 청년들에게 ‘희년’을 선물하기 위해 2016년 시작된 것이 바로 사회적 금융 협동조합인 ‘희년은행’이다.
희년은행에 가입한 조합원들은 기존 은행과 동일하게 예금을 맡긴다. 차이점이 있다면 희년은행에선 예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 대신 조합원들이 맡긴 소중한 예금은 고금리에 허덕이는 청년들에게 무이자 전환 대출을 해주는 마중물로 활용된다. 희년은행에 맡겨진 출자금은 다른 예금과 마찬가지로 인출을 원할 때 언제든 인출해 사용할 수도 있다.
“20% 이상 고금리 대출을 최대 300만 원까지 무이자 대출로 전환해줍니다. 그러면 한 달에 수십만 원에 달하던 이자를 원금을 상환하는데 쓸 수 있게 되죠. 매달 이자만 갚느라 미래가 보이지 않던 일상이 끝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돼요. 희년은행에선 단순히 전환 대출을 해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재정상담을 통해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대출규모가 천만 원을 넘어가는 이들은 3백만 원 전환 대출로는 크게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마음 같아선 천만 원이라도 빌려주고 싶지만 상환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 그래서 이들의 경우 재무상담으로 안내해 개인회생 등의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돕는다.
아직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4년차 임에도 누적 대출액은 벌써 3억 5천여만 원에 이른다. 현재 진행 중인 대출 건수도 40여 건이 넘는다. 희년은행을 통해 절망을 딛고 일어나 새 삶을 찾은 청년들을 보는 것이 희년함께와 김덕영 사무처장의 가장 큰 기쁨이다.
“희년은행이 출범하는 계기가 된 청년이 있어요. 880만 원의 고금리 대출이 있었는데 그 청년이 속한 공동체에서 380만 원을 탕감해주고 500만 원을 무이자로 전환 대출 해줬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의 재정상담과 상환관리를 희년함께에 부탁하셨죠. 그것이 희년은행의 시작이 됐습니다. 지금 그 청년은 상환을 마치고 행복하게 새로운 삶을 살고 있어요.”
부동산 폭등의 시대에서
희년은행과 함께 희년함께에서 가장 주력하는 사역은 다름 아닌 성경적 토지 정의를 한국교회에 알리는 일이다. 여전히 교회에 성도들이 모이면 부동산 투기 정보가 공유되고, 집값이 올라 불로소득을 취한 것이 자랑거리가 된다. 부동산 투기 열기가 제일 뜨거운 강남의 경우 기독교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에 속한다. 희년의 정신을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과 공유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매년 7월 말 예수원에서 열리던 희년학교는 올해 코로나의 영향으로 인해 9월 중 온라인으로 개최한다. 희년 절기가 돌아오는 추석 즈음을 희년기념주일로 지키자는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내년에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기독교인들과 대중들을 상대로 성경적 토지 정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다.
희년 정신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알리기 위해 보드게임도 제작했다. 헨리 조지의 토지 가치세 개념을 전파하고자 엘리자베스 메기 여사가 1904년 제작한 ‘지주게임’을 현대에 맞게 복원한 것이다. 유명 보드게임 ‘모노폴리’의 원작이기도 한 이 게임은, ‘모노폴리’가 토지를 독점하고 통행료를 많이 걷는 것이 목적인 것과 달리 토지의 가치를 나누는 토지 공개념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하지만 희년함께의 피나는 노력에도 천정부지로 솟는 집값은 떨어질 줄 모른다. 매일 상한가를 치는 서울 집값을 보며 무력감을 느낄 때도 없진 않다. 하지만 희년함께가 사역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람과 사회를 살리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과 고난을 택하셨어요. 그런 면에서 그분을 따르는 우리는 기득권을 헌납하고 자기를 부인할 수밖에 없는 집단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성령의 감화가 있고 나서 성도들이 재산을 내어놓았어요. 성령 충만이 자연스레 세상을 향한 섬김과 사랑으로 표출된 거죠. 하지만 지금은 성령의 감동을 외치는 교회가 영적인 것만 바라보고 사회 정의에는 무관심한 것이 안타까워요. 부동산 폭등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크리스천이 어떻게 희년 정신을 실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낼 것인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