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
츠빙글리는 당대의 시련을 하나님이 계획한 일, 하나님의 섭리로 인정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지” 시험한다. 츠빙글리는 거짓말이 난무하는 때에도, 진리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더욱 찬란히 빛남도 잊지 않는다. 츠빙글리에게 염려가 없지 않은데, 모략꾼들이 왕과 본인 사이를 거짓말로 갈라놓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츠빙글리가 생각하는 그들의 거짓말은, 그가 기독교를 파괴하고 있으며, 왕을 위시한 정치 권력의 권위를 짓밟고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츠빙글리가 정치지도자들을 향한 존경을 ‘신앙선언’에서 특별히 강조하지 않았나 추측할 수 있겠지만, 츠빙글리의 주된 관심은 자신이 믿고 선언하는 개혁신앙,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확신(히 11:1)임을 분명히 밝힌다. 츠빙글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설명하며, ‘신앙선언’을 시작한다. ‘신앙선언’에서 츠빙글리는 하나님, 그리스도, 연옥, 성찬, 미사, 성례, 교회, 세상 권세, 죄 용서, 믿음과 공로, 영원한 생명, 재 세례파를 다룬다.
하나님, 그를 향한 경외
하나님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영원하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무한하신 하나님으로 하나님만이 유일무이하다. 이 근거 위에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다”고 고백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더구나 과거에 존재하지 않다가 어느 시점부터 존재하기 시작한 모든 것은 신앙의 대상이나 근거가 될 수 없다. 존재하지도 않은 것은 신앙의 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일한 신앙의 대상은 유일하고, 영원하며, 무한한 그 누구로부터 만들어지지 않은 하나님뿐이다.
아무리 그 어떠한 것이 거룩하다 할지라도 피조물과 성례를 믿는 것은 맹신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먼저 믿어야 한다. 츠빙글리가 ‘성인들과 성례를, 마리아를 경멸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비난하는데, 츠빙글리는 그것보다는 오용방지에 의도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마리아는 자신이 신적 경배를 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아들 예수가 받는 경외를 기뻐했다. ‘무신론자와 귀신의 미친 짓’인 우상은 자신을 섬기게 하여 세상을 어둠에 빠뜨렸다. 헤롯 왕의 죽음은 이를 잘 보여준다.
성례도 거룩함의 표식과 상징으로 존중하지만, 성례 자체가 거룩하기에 숭배하는 것은 아니다. 성례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역사적 실체를 상징하며,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여, 우리의 눈으로 보게 한다. 감사의 예식(Dankfeier) 성찬식은 눅 22:19을 따라 그분의 죽음, 하나님의 독생자를 통한 사랑의 행위를 기억한다. 빵과 포도주의 상징을 보면서 그리고 말씀을 들으면서, 청각과 감각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고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때 성령은 자신이 기뻐하는 그리스도를 느끼게 한다. 츠빙글리는 이러한 이해가 주님 자신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 초대교회의 이해와도 일치하기에, 두려운 마음으로 후대는 마땅히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성인이나 성례가 죄를 용서한다고 성경은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 외에 죄를 용서할 자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