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오가기 어려운 보육원 영아들 위한 예배로 시작
돈이 없어 못 배우는 아이 없도록 돕는 ‘진짜 공부방’
규모에 상관없이 예수 사랑 실천 위해 날마다 ‘고심’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주의 은혜 나누며 예수님을 따라 사랑해야지 우리 서로 사랑해. 예수님이 가르쳐 준 한 가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미움‧다툼‧시기‧질투 버리고 우리 서로 사랑해.”
중고등학생 시절 도덕‧윤리 교과에서는 여러 종교들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불교는 ‘자비’ 유교는 ‘인의예지’ 하는 식으로 해당 종교를 대표하는 키워드를 가르쳤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사랑이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기독교’하면 먼저 ‘사랑’을 떠올린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넘쳐야 할 사랑은 어디 가고 미움과 다툼, 시기, 질투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천에 한 보육시설이 있다. 원래는 서울에 있던 것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지방으로 옮겨졌다. 이 곳에는 1~19세 아이들이 옹기종기 살고 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보육원에 들어온 아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교회도 간다. 그런데 제 발로 교회 문턱을 넘을 수 없는 영유아들은 교회에 가기가 어렵다.
지난 2016년 7월에도 보육원에는 23명의 영아부 아이들이 있었다. 인솔 교사는 3명. 셋이서 이 많은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소식을 들은 이요섭 목사는 당장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예배를 시작했다. 그 주에 아내와 함께 보육원 강당에서 처음 주일 예배를 드렸고, 그것이 ‘더사랑교회’의 시작이었다. 주님의 ‘그’ 사랑(The Love)으로 ‘더’ 사랑(Love More)하기 원한다는 이천의 더사랑교회를 찾아가봤다.
크리스천의 사랑이란 뭘까
더사랑교회의 이요섭 목사는 30년 전이던 중학교 2학년 때 부산에서 이천으로 이사를 왔다. 그때 지금의 보육원 원장인 신 선생님(실명 공개를 원치 않는 관계로 성만 표기함)을 처음 만났다. 주일학교 교사였던 신 원장은 당시 보육원에서 보모로 일을 하고 있었다. 이 목사가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을 때도 선생님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청년 이요섭은 이 무렵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회심한다. 성경을 읽어 내려가는데 야고보서의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대목에서 맥이 끊겼다. 도저히 다음 본문으로 넘어갈 수가 없어 선생님을 찾아가 대뜸 “보육원에 살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는 신 선생님이 보육원 원장으로 취임한 후였다. 보육원 관계자들은 반대했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객기를 부린다고, 한두 달 살다가 그만 두면 젊은이도 상처, 보육원 아이들도 상처 받을 거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원장님은 젊은 제자에게 신뢰를 보냈고 결혼 전까지 2년여를 중학생 남자 아이 세 명과 한 방을 쓰며 살 수 있었다.
이후 사회인이 되고 신학을 할 때까지 이 목사와 보육원은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간다. 학부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한 그는 학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후에는 학원을 인수해서 직접 운영했다. 보육원 아이들 몇 명을 데려와 가르쳤는데 학부모들이 자기네 애들은 보육원 애들이랑 같이 교육 못 한다며 학원을 그만 뒀다. 그런데 놀랍게도 학원은 금세 성장했다. 논술 학원까지 한 곳 더 차렸고 주변의 개척교회 목사님 아이들까지도 무료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랑의 크기와 규모는 비례하지 않아
39살 늦은 나이에 신학의 길을 선택하면서 입시학원은 매각을 했지만 논술 학원은 돈이 되지 않는 것이 알려졌는지 팔리지 않았다. 낮에는 학원을 운영하고 밤에는 신학공부를 하는 강제 주경야독이 시작됐다. 이때 팔리지 않은 학원이 목회자가 된 지금에 와서 사역의 한 축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
더사랑교회의 사역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면 보육원 아이들과 관련된 것이 첫째, 둘째는 2년 전 건물을 지은 ‘더사랑교회’ 예배당에서 진행되는 장년 대상 사역이다. 세 번째가 바로 논술학원에서 진행되는 ‘진짜 공부방’ 사역이다. 근방 십리 안에는 돈이 없어서 공부 못하는 아이가 없게 하자는 것이 이 사역의 취지다. 올해는 처음 영아부 예배를 함께 드렸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진학한다. 교회는 공부방을 아이들이 다닐 학교 인근으로 옮기고 리모델링까지 다시 했다.
현재 더사랑교회에는 장년부 15명, 주일학교 15명, 영아부 15명 가량이 매주 출석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보육원 아이들이 포함된다. 그렇지만 더사랑교회 교인들은 “영아부만 23명이 시작한 교회”라며 자부심을 나타낸다. 교회 규모와 관계없이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보육원 사역도 공부방 사역도 사랑이 없으면 오래 지속할 수 없다. 감사하게도 이 교회 교인들은 물심양면으로 이 목사를 돕고 있다.
“학원을 하던 당시 학부모였던 분이 저희 교회 첫 번째 세례교인으로 등록하셨고, 남편 분은 두 번째 세례교인이 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처음인 분들이지만 지금은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계십니다. 또 다른 분은 사택 화장실을 수리하러 오셨던 목수이신데 이제는 교인이 되어 교회의 리모델링과 수리를 전담해주고 계십니다. 청년들도 매주 이른 시간에 다음세대교회로 변신한 공부방에 와서 교사로 섬겨주고 교회로 이동하는 힘든 일을 감당해 주고 있습니다. 긍휼한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지쳐서 떠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초반에는 이런 사역에 열광하지만 생각으로 하는 것과 삶으로 실제 사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고 돌아갑니다.”
상식 밖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사랑이라는 것이 원래 다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교회가 하는 일마다 물질적으로 투입만 해야 하는 사역들이다. 주변에서는 돈 안 되는 일만 골라서 한다며 이 목사를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때마다 까마귀를 보내셔서 이 목사와 교회를 먹이신다. 더사랑교회의 사연을 알게 된 몇 몇 교회들이 “세상에 이런 교회 하나는 존재해야 한다”며 후원을 자처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성남의 우리는교회(담임:박광리 목사)와 심플교회(담임:양순모 목사), 한국어깨동무사역원(대표:윤은성 목사) 등이다. 그 흔한 ‘돈 많은 장로님’ 한 분 없지만 교인들의 노력과 돕는 손길을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꾸역꾸역 사역이 지속되고 있다. 문화사역자들도 시시때때로 찾아와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펼쳐주고 있다.
“어제도 월세를 내고 공부방 통장을 보니까 잔고가 4천원뿐이더라고요. 하나님께 ‘저한테 왜 그러시느냐’고 기도를 했는데 밤늦게 전화 한 통이 왔어요. 지역에서 편의점을 몇 군데 하시는 분인데 ‘술 먹고 목사님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는 겁니다. 자기가 돕고 싶은데 뭘 도우면 되느냐고 그래요. 예수를 믿는 분도 아니고 딱 한번 본 분인데 말이죠. 술 깨면 후회할 수 있으니까 빨리 보낸다면서 그 자리에서 후원금을 보내주셨어요. 너무 감사하죠. 50대 남자 분이 술을 먹고 목사가 생각났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이런 일은 손으로 꼽기 힘들만큼 많다. 이 목사는 “상식선에서 살면 하나님도 상식선에서 도와주실 텐데 우리 교회가 말도 안 되는 삶을 사니까 하나님께서 말도 안 되게 도와주시는 것 같다”며 웃었다.
더사랑교회는 특이하게 해마다 그림 표어를 선정하고 있다. 2018년에는 돌아온 탕자로 살자는 뜻에서 램브란트의 ‘탕자의 귀환’, 2019년에는 착한 이웃이 되자는 취지로 고흐의 ‘선한 사마리아인’을 교회 벽에 걸었다. 올해는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이다.
“그림 표어를 사용하는 것은 잃어버린 우리의 상상력을 발동시키자는 취지였어요. ‘씨 뿌리는 사람’의 그림처럼 올해는 씨를 부리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랑의 씨를 아이들에게, 장년 성도들에게 열심히 뿌리고 싶어요. 우리 교인들도 함께 씨를 뿌리면서 지속가능한 세속공동체로서 더사랑교회가 주님의 그 사랑을 더 많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