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없다
츠빙글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루기 전에 ‘최고의 선’인 하나님을 설명한다. 하나님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츠빙글리는 ‘신앙적 이해와 더불어’ 하나님을 ‘최고의 선’이라 부른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는 철학적이고 논리적임에도 계시 신앙에 근거한 신앙적 이해를 제시한다. 츠빙글리는 때론 자신의 논리를 ‘너무 철학적’(ein wenig allzu philosophisch)이라고 비판적으로 자각하기도 한다. 츠빙글리에게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선하며, 최고로 선하고, 항상 선하며, 스스로 선하며, 진리이다. ‘최고의 선’이란 하나님은 유일한 선이며, 본성으로부터 선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선인 하나님은 최상의 능력이고, 무한한 능력이며, 최고로 신실하다. 츠빙글리는 최고의 선을 선의 총합이며, 본질이고, 단순성, 순수성, 빛과 바름, 불변성으로 이해한다. 그 최고의 선 안에 존재할 때, 그 선은 최고의 선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최고의 선’인 하나님의 섭리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부정할 수 없는데, 그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것을 돌보고 질서를 정해주기 때문이다. 모든 걸 할 수 있고, 모든 볼 수 있는 최상의 존재는 또한 모든 걸 선하게 다스리고 주관하며 돌본다.
최상의 선인 하나님과 상관없이 그 무엇이 우연히 일어난다면, 먼저, 그가 어떤 무엇을 돌봄을 포기하거나 거부했을 경우, 더 지배할 수도 도울 수도 없는 경우, 불순종하지 않은 사물을 인도도 보호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로 최고의 선 하나님에게 일어날 수 없다. 하나님의 섭리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는 최고의 선은 신성한 빛, 바름, 순수, 단순으로 이루어진 진리이기 때문이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은 모든 사물에 대하여 선하고 공평하다. 츠빙글리는 성경에 근거하여 최고의 선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섭리를 균형적으로 묘사한다. “성경에 의하면 아버지는 전능하며, 은혜와 선은 아들에게 속하며, 진리는 성령에게 위임한다.”
츠빙글리는 철학자의 지혜와 구별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한다. 츠빙글리는 지혜와 사려 깊음, 조심성, 예측을 나누어 설명하는데, 지혜는 철학자의 개념을, 사려 깊음, 조심성 또는 예견은 하나님의 섭리와 연관성 속에서 바라보면서도, 성경은 두 개념을 번갈아 가며 비슷한 의미로 사용한다고 본다. 지혜는 뛰어난 지성이 지니는 능력으로 진리, 빛, 순수를 말하고, 섭리는 그 지혜가 처리하고 주관하는 행위에 무게를 두는 능력으로 구별한다. 지혜를 결정과 행동으로 옮기는 현명한 사람은 사려 깊은 사람이다. 지혜는 파악하는 능력을, 사려 깊음은 행동하는 능력이다. 바람직한 경우는 이 두 가지가 함께 할 때이다. 성경 인물 중 요셉, 모세, 요시야는 지혜를 행동으로 옮긴 사려 깊은 지도자이다. 이런 전제를 근거로 츠빙글리는 섭리를 모든 사물에 대한 영원불변한 통치와 주관으로 정의한다. 하나님의 통치는 참으로 신실하고, 참으로 치유하며, 참으로 환영할 만하며, 전혀 부담이 없이 편안하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본성을 따라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주관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며, 거저 받아 감사와 기쁨을 누리는 것으로 족하다. 그 외 하나님은 아무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주도홍 교수의 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74)
저작권자 © 아이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