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입니다. 단정하고 예쁘게 차려입은 하객들 앞에, 훨씬 더 멋있고 아름답게 입은 신랑신부가 있습니다. 축가가 끝나고 ‘아버지의 편지’ 차례가 되어서 신부 측 아버지가 단상 위에 올라갑니다. 신부의 눈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신부의 아버지가 입을 엽니다.
자, 이 때 문제입니다. 신부의 아버지는 ‘우리 딸이 어느새 이렇게 컸다’는 것을 편지 서두에 표현하고자 합니다. 과연 어떤 표현을 쓸까요?
네! 아마 우리 중의 대부분은 같은 문구를 떠올렸을 겁니다.
‘우리 선아가 000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워낙 많이 사용된 표현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건, 사실 저 문구의 표현력은 ‘시간이 빨리 흘렀네요’처럼 사실만 전달하는 문장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들었다보니 저 말이 지니는 생동감이 닳고 닳았기 때문이지요. 이런 표현을 보고 ‘사비유’라고 합니다. 오랜 기간 사용되어 이제는 생명이 다해 표현력을 잃은 단어나 문장을 이르는 말입니다. 사실 저 ‘엊그제’ 표현도 맨 처음 등장했을 땐 굉장히 신선했을 겁니다.
“아니 그 긴 세월을 과감하게 이틀 전과 같다고 표현하다니! 세월의 흘러감을 빠르게 느낀 그 마음이 전해져 오는 듯 하구만!”
아마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사용되어 온 것이겠죠? 그러나 이젠 누구도 이 말을 지금처럼 신선하게 바라보긴 어려울 겁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사비유는 많습니다. 예를 들어, ‘쏜살 같이’, ‘눈 깜짝할 사이’, ‘불 보듯 뻔하다’ 등이 있겠지요. 이 모든 표현들은 아마 만들어졌을 당시 창작자의 개인 경험에 기반해서, 그리고 동시대 독자들의 공감대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표현일 겁니다. 그래서 당시엔 아마 굉장히 신선하고 생동감 있는 표현이었을텐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죠. 위에서 얘기했듯 너무 자주 들은 표현이기 때문이고, 더 큰 이유는 ‘나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살 한 번 쏴본 적 없이 ‘쏜살 같이’라는 표현의 깊이를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있겠지요.
그래서 습관적으로 이런 사비유를 쓰고 싶을 때에 ‘나만의 표현’을 만들어서 써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현재 전달하고 싶은 나의 감정에 집중하고, 나의 경험과 생각에 기반해서 멋있는 표현을 한 번 만들어 보는 겁니다. 네, 물론 쉽지 않겠지요. 때로는 어설퍼서 사비유를 쓰는 게 더 나았다 싶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본인의 경험이 묻어나는 표현에서 사람들은 여러분의 글에 매력을 느낄 겁니다. ‘설교하다 설교문 날아간 목사마냥’, ‘밤 12시에 내일 새벽 기도를 인도하라는 연락을 받은 전도사마냥’ 이런 표현을 만드는 습관 하나 하나가 쌓여서 언젠가 ‘신선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호칭으로 돌아올 때가 있지 않을까요?
글의 마지막으로, 저 위에 신부 아버지가 쓰신 사비유를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선아를 키울 때, 아내의 성화 때문에 선아에게 젖병을 물리는 역할은 제가 도맡아 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제 오른손엔 딸아이 입에 젖병을 물리던 감각이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이 오른손에 딸아이의 결혼을 축하하는 편지를 쥐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