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하는 말씀을 떠올려 보면, 예수님은 비유를 참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 비유에 있는 생생한 전달력을 높이 사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신의 주장이나 감정을 그대로 말하는 것도 좋지만, 감각으로 느껴지는 실제 대상을 제시하게 되면 사람들은 더 선명하고 확실하게 글쓴이의 사고를 전달 받을 수 있습니다.
‘짜증났다.’ 이런 단순 문장과 ‘짜증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효민이가 내 앞에서 일부러 손톱으로 칠판을 긁었을 때처럼’ 과 같이 비유가 사용된 문장의 전달력 차이는 지금 보시듯 확연하게 다릅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조차도 목이 움츠러들었네요.)
어떻게하면 비유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요? 너무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첫 번째 방법은 ‘비유를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입니다. 글쓰기에서 비유가 동원되지 않는 대표적인 이유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 비유를 사용할 생각을 잘 떠올리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주옥같은 기회를 저버렸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문장을 적고 나서, 비유를 통해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한 번쯤 찾아보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더불어 평소에 어떤 감정이나 감각을 느꼈다면 “이것을 뭐에 비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고 좋은 비유는 메모장에 적어두는 습관까지 동원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비유를 잘 활용하기 위한 방법 두 번째로, 재료를 평소에 잘 모아두는 것입니다. 간혹 비유를 사용하려고 결심했으나, 식상한 비유들만 나오는 저자를 볼 때가 있습니다. ‘호수같은 눈망울, 체리같은 입술’이 대표적이겠네요. 그 말이 처음 나왔을 때야, 들은 사람이 감동했겠지만, 이제는 누군가가 이런 표현을 연인에게 한다면 ‘아재’소리 듣기 딱 좋을 겁니다. 식상함은 감각을 마비시킵니다. 좋은 비유는 신선해야 하며 그 글을 읽었을 때 실제 그 감각을 느끼는 것처럼 생생해야 합니다. 어떡하면 신선하고 생생한 비유를 가져 올 수 있을까요? 바로 나만의 생생한 감각에서 건져오는 것이 최고입니다. 즉, 내가 평소에 어떤 인상적인 감각을 느꼈다면, 그 순간의 감각을 메모해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명석이는 두리안이다. 뾰족하고 딱딱한 말투를 갖고 있으나 놀라우리만치 달콤한 배려심이 그 안에 있다.” 처럼 개인의 경험에 근거한다면 신선한 비유가 나올 수 있겠죠.
오늘 사랑하는 사람에게 비유를 사용한 카톡을 해봅시다.
재밌는 표현도 나올 수 있겠네요.
“여보, 당신은 아주 커다란 느티나무 같아.”
“왜?”
“아주 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