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빙글리의 베른 설교 (1528년)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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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의 베른 설교 (1528년)30
  • 주도홍 교수
  • 승인 2019.02.2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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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36

1528년 1월 6일부터 26일까지 스위스 베른(Bern)에서 신학 전반에 관한 대논쟁이 벌어졌다. 여기서 취리히 종교개혁자 츠빙글리의 복음에 대한 입장이 승리를 얻어, 새로운 복음이 서유럽으로 퍼져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베른 대논쟁 이후 츠빙글리는 12 가지로 기독교신앙을 정리하여 발표하였는데, 자신을 이단자로 모는 사람들에 대한 반박의 글이었다. 그의 후계자 불링어(H. Bullinger)는 이에 대하여 츠빙글리가 분명하고 단호하게 입장을 제시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고 평가하였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츠빙글리와 입장을 같이한 스위스와 남부 독일의 8명의 종교개혁자들은 개인적 신앙 양심과 사회생활 영역에서 종교개혁 진리를 구현하기 위하여 비로소 각 교회 강단에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츠빙글리는 이 대논쟁이 벌어지는 기간에 베른 시민들 앞에서 두 차례 설교를 할 수 있었다.

츠빙글리는 일반적으로 원고 없이 설교하는 스타일이었으나, 6개월 후 1528년 7월 그 두 편의 정리된 설교는 출판되어 사람들의 손에 들려졌다. 츠빙글리가 기억을 살려 그 설교들을 기록한 것인데, 본래 설교보다 더 명료하게 작성되었다.

성찬에 대한 루터의 입장들이 확실하게 인용되었으며, 다른 반대자들에 대한 입장도 확실하게 제시되었는데, 신학적이고 교리적 설교라 일컬어도 무리가 없겠다. 첫 설교는 1528년 1월 19일 월요일 요한복음 6장을 본문으로 성찬에 대한 이해를 제시하였다. 츠빙글리가 전선을 형성해, 비판해야 하는 주된 상대들로는 로마교회의 화체설과 루터교회의 공재설이었다.

츠빙글리가 자신의 신학을 변호하기 위해 가져온 것은 공적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이었다. 츠빙글리는 사도신경을 한 구절 한 구절 차분하게 해설하면서 로마교회, 루터교회, 인문주의, 재세례파, 다양한 사상들에 대한 논쟁을 자신의 ‘성령 신학’(Theologie des Heiligen Geistes)에 서서 전개하였다. 츠빙글리는 여타 신학과 사상들을 싸잡아 비판하길, 그들은 피조물이면서 신의 위치에 오르려는 우상화의 오류(Kreaturvergoetterung)를 범하고 있다고 하였다. 특히 성례 이해에 있어 위험한 것은 물질을 신성화하는 사상(Heilsmaterialismus)으로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망각하며 신 인식을 잘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츠빙글리는 첫 번째 설교에서 최고선이신 하나님을 다루며, 믿음은 성부 하나님, 인간이 되신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인격적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츠빙글리에게는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우리의 구원이 아니라,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이다. 그러기에 성례전의 핵심은 교회공동체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현재화하여 그리스도의 영적 현존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두 번째 설교는 대논쟁이 끝난 다음 날 1528년 1월 30일 금요일 로마서 11:28을 가지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오래 참음’에 관하여 말하다, 결론부에서는 갈라디아서 5:1을 가지고 자유를 통한 ‘담대함’을 주제로 했는데, 당시 예배당은 모든 교회 장식과 제단이 제거된 상태였으니, 분위기는 그렇게 밝지 않았다. 이 설교를 끝으로 츠빙글리는 베른 시를 떠났다. 일주일 후 1528년 2월 7일 베른 종교개혁 협정서가 합의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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