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는 1526년 3월 말 부활절 성찬식을 겨냥해 세 편의 설교를 작성했다. 같은 해 가을 이 설교들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례전에 고한 설교. 열광주의자들을 반대하며”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츠빙글리는 동료 빌헬름 폰 첼(Wilhelm von Zell)을 통하여 루터의 이 설교들을 입수하여 세심하게 정독해야만 했다. 루터가 지목하는 “열광주의자” 또는 “소란하게 하는 자” 중 한 사람이 바로 츠빙글리였기 때문이었다. 츠빙글리는 루터의 설교를 읽는 중 문제점을 발견하였고, 이에 대한 반박의 글을 써야만 했다. 이렇게 하여 츠빙글리의 중요한 성례전에 관한 라틴어 논쟁서 “Amica Exegesis”(친절한 해명)가 1527년 4월 1일 세상에 등장하였다.
이 글은 글라루스에 있는 친구들이 보내온 편지 가운데 루터의 신학에 대한 우려를 표시할 때, 츠빙글리가 3일 만에 완성한 답변이었다. 그런데 츠빙글리는 루터뿐 아니라 친구들 그리고 모든 크리스천을 대상으로 자신의 입장을 쉬운 독일어로 다시 써야만 했다. 곧 “열광주의자라고 비판하는 루터의 설교에 대한 우정 어린 해명”이라는 글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단어는 “우정 어린”이라는 말인데, 이는 비록 생각이 다를지라도 츠빙글리의 루터를 향한 존경과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는 말이다. 루터가 츠빙글리를 어떻게 생각했느냐는 다른 물음이다. 츠빙글리가 처음으로 루터에게 보낸 이 글에서 등장하는 성경 요절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요6:44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영원한 신비로서 그리스도의 육체적 현존에, 츠빙글리는 부활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으로서의 현존에 강조점을 두었다. 루터는 육체로 내려오신 그리스도를, 츠빙글리는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으로 확증되신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둘 사이 차이점은 루터에게는 교회를 분열시킬만한 큰일이었지만, 츠빙글리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츠빙글리는 성찬의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의 육체적 현존을 주장하는 루터에 대하여 다른 입장을 취하였다. 츠빙글리는 “루터는 자신이 말한 것에 더 이상 진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츠빙글리는 루터를 향한 자신의 반박문이 일반 성도들에게 “깊은 아픔을 줄 수도 있을 것” 또는 “불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렇지만 루터를 향한 츠빙글리의 입장은 분명하고 완강했다. 츠빙글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신앙과 성경의 관점에서” 밝혀야 했는데, 무엇보다 성경을 틀리게 해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다르게는 루터의 “거짓말”을 막기 위해서였다. 츠빙글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례전에서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친 하나님 아들을 믿는 것”이었다. 츠빙글리에게 믿음과 성경은 서로 모순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츠빙글리에게 성경은 신앙 안에서만 이해되며, 바른 신앙은 성경으로만 증명되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억지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비판받아야 합니다.… 나는 화내거나 어떤 악한 마음도 품지 않고 루터가 전능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성례전의 비밀은 잘못된 계시임을 성경의 증거를 제시하여 최대한 분명히 밝히려 합니다.”(츠빙글리, 『저작 선집 4』, 임걸 역, 14)
주도홍 교수의 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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