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민 1만6천명 반대서명...피해가족 "신천지 반사회적, 어이없다"
인천시설공단 "문제 없다" 최종결정...HWPL "종교와 무관 평화행사"
인천시설공단(이사장:이응복)이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신천지증거장막성전과(이하 신천지) 관련된 단체가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신천지 교주 이만희가 대표로 있는 (사)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이하 HWPL)은 9월 17~18일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만국회의 4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할 목적으로 지난 4월 대관을 신청했고, 5월 사용 승인이 났다. 지난 8~9일에는 만국회의 리허설도 진행됐다. 만국회의에는 주로 신천지 교인들이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국에서 수백대의 버스가 동원될 예정이다.
만국회의는 2014년 9월 처음 개최됐으며, HWPL은 매년 9월 18일 전후로 만국회의를 열어오고 있다. HWPL측은 "만국회의가 평화행사일뿐 신천지와 관련된 종교적인 행사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만국회의는 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구호를 주창하는 행사이지만, 그간 행사에서는 북한을 연상시키는 대규모 카드섹션, 열병식 등을 비롯해 단체 대표이자 신천지 교주인 이만희가 조명받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들이 있었다.
기독교계 단체들은 이만희 신격화를 위한 행사라고 규정해왔다. 심지어 2016년에는 참석자들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성인용 기저귀를 찼다는 언론보도가 있기도 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신천지의 유관단체가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대규모 공공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 인천시와 인천시설공단을 향한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공공시설 이렇게 쓰일 순 없다”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을 HWPL이 대관했다는 사실은 뒤늦게 지난달에야 알려졌다. 인천시기독교연합회는 지난 8월 17일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대표:홍연호)로부터 사실을 확인하고, 이후 대관취소 서명운동, 단식투쟁, 관계자 면담 등을 진행했다. 인천시민 1만6천명 반대한 서명지를 인천시와 인천시설공단에 제출했지만, 그동안 변한 것은 없었다.
지난 14일 인천시청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신천지에 빠져 가정 해체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은 절규했다. "공공 시설물을 신천지에 빌려준 것만으로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한탄했다.
인천 연수구 주민 정경숙 씨는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시설을 어떻게 신천지에서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HWPL은 신천지 이만희가 대표로 있는 곳이고, 신천지 교주는 이만희인데, 어찌 평화행사라고 하는 말을 믿을 수 있느냐”며 “인천시는 시민이 자부심을 갖도록 사용허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천지에 빠진 자녀들을 찾고 있는 부모들의 호소는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인천시청 직원과 민원인들도 부모들의 목소리를 관심 있게 듣는 표정이었다. 피해 가족들은 인근에서는 신천지 교인들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사진을 찍는 등 채증하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신천지에 빠져 5년 반 전 가출한 자녀를 두고 있다는 A 씨는 “세 번째 가출 이후 3년 동안 신천지 센터와 교회를 다니며 딸을 찾고 있다. 가족을 파괴하는 신천지가 평화라는 이름을 들어 인천 아시아드에서 대회를 한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라며 “아무리 외쳐도 인천시와 시설공단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 조례대로 대관을 취소만 하면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피해자 B 씨는 “(자녀가) 사이비에 속아서 인생이 망가지고 가정이 파탄이 났다. 나라는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이냐”며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고생하며 취소를 요구해도 시설공단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 취소 사례가 있는데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C 씨는 “부모와 인연을 끊겠다고 하고는 전화번호도 바꿔버렸다. 부부는 계절이 바뀌어도 감흥이 없고 사소한 행복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행방불명된 자녀가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인천시와 시설공단 입장은? "예정대로"
인천시기독교총연합회와 신천지 피해 가족,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 등은 종교적 이유로만 신천지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 아니다. 신천지의 반사회성에 대한 법적 판례가 존재하고, 이미 여러 차례 주요 방송매체에서 신천지의 사회적 문제점들이 알려진 만큼 조례에 명시된 기준에 따라 충분히 대관취소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신천지 피해 가족들은 ‘인천광역시 시립체육시설 관리 운영 조례’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만국회의에 대한 동영상 자료와 언론보도, 외국 참여자의 항의 인터뷰 등을 찾아만 봐도 조례 제3조 “체육시설을 이용하고자 할 때는 신청자, 목적 등이 사실에 기초해야 함에도 신청내용이 상이한 점”에 대한 입증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또 "신천지에 빠진 자식을 찾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존재하고, 타시도에서 피해자와 신천지 간 행사장 내외 충돌이 발생한 바 있기 때문에, 조례 제7조 ‘사용허가 제한 항목에 대한 위반’, 제16조 사‘용허가 취소 및 정지’를 적용할 수 있으며, 특히 제18조 양도 및 전대의 금지위반을 들어 HWPL과 신천지는 별도의 등록단체이나 이만희라는 주최 책임자가 동일인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4일 인천시청에서 만난 인천시 관계자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박남춘 시장이 당선되기 전에 공단에서 허가를 내주었고 허가권도 위탁계약에 따라 공단 측에서 갖고 있다”면서 “HWPL 대표가 이만희라는 것을 확인한 박 시장이 승인 자체에 대해 (문제점으로) 지적한 적도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인천시 담당국장은 “신천지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향후에는 공정한 심사를 거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앞으로 신천지와 유관단체에 대관을 하지 않을 것이며, 시장님도 사회적 물의가 있다면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천시설공단은 이날 대관을 취소하지 않기로 했다는 최종 입장을 공문으로 공개했다.
공단 측은 “지난 8~9일 리허설 기관 당초 행사목적과 다르게 진행되는 점을 찾지 못했고, 안전사고 발생과 관련해 별도의 이행각서를 징구했다”며 “대관 취소로 인한 실익을 감안하고 규정에 따라 허가된 사항을 취소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어 행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반대단체에 통보했다.
하지만 인천시설공단의 최종 입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리허설을 봤기 때문에 안전상 문제가 없었다고 하지만, 이미 수차례 보도된 신천지에 대한 반사회적 문제점들을 덮기에는 부족하다.
대관 문제점을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취소할 경우 140여억원을 배상해 줘야 할 수 있다”고 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당혹스러워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런 말 자체가 신중하지 못한 공단의 결정을 반증하는 듯하다.
인천시 관계자가 언급한 대관료 약 4,500만원 정도를 감안하면, 배상비용은 터무니없는 액수이다.
더구나 신천지에 대해 지적되는 문제점 때문에 2주전 안산시는 와스타디움 사용승인을 거부한 바 있다. 2년 전 공군회관에서 이만희 초청 강연은 행사 이틀 전에 취소된 바도 있다.
인천시 조례에도 정당한 사유일 경우 취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규정이 명시돼 있다.
인천시는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 사용의 허가권한이 인천시설공단에 있다고 책임을 돌렸지만 최종결정권자는 박남춘 인천시장에 있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반대 여론이 커지는 데도 대관을 승인한 인천시설공단 이응복 이사장에 대한 인천시민들의 여론은 싸늘해지고 있다.
한편, 신천지 피해 가족과 관련단체들은 만국회의가 열리는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 일대에서 신천지의 실상을 알리는 집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집회신고를 해둔 상태이다.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인천시와 경찰당국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