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조, 20조는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운다. 츠빙글리는 예수 외에 그 누구도 죄인들의 중보자가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더 나아가 츠빙글리는 자신을 성인중보기도를 “폐기해 버리라고 감히 주장했던 첫 번째 사람”으로 내세운다. 성인들의 중보기도를 츠빙글리가 부정함은 그들의 명예를 추락시키려 하는 것은 아니다. 성인숭배와 그들의 중보기도를 성경 그 어디에서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성인들에게 기도하기보다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들은 주님이 얼마나 사랑이 많은지 체험하게 되고, 주님을 더욱 가까이 알게 됨을 츠빙글리는 강조한다. 그렇게 될 때,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며, 그 하나님을 떠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츠빙글리는 성인숭배를 우상숭배로 정죄한다.(츠빙글리, 『저작 선집 2』, 210-211)
츠빙글리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공로나 선행을 과연 내세울 수 있는 것인지를 묻는다. 성인들의 공로나 업적을 내세우고 그들의 공로를 힘입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라는 것이다. 먼저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공로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느냐를 물으며, 다르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행하신 일을 우리가 한 일로 변조한 잘못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의로운 성인들이 그 어떤 조그마한 일도 자기들이 한 것처럼 결코 말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쯤해서 츠빙글리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믿음은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정의한다.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고백하며, 그 믿음은 점점 자라고 커진다. 그 믿음은 처음에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하나, 싹이 나고, 이삭을 내고, 그 다음에 알찬 곡식이 되는 것처럼, 믿음도 이렇게 자라 열매를 맺는데, 그 믿음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로 그 믿음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의 성장은 우리의 인식을 떠나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 믿음 안에서, 그리고 삶의 변화를 통해서 자라나게 하신다.
“믿음이 자라면 자랄수록, 선한 행동은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믿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하나님이 당신 안에서 더 크게 차지하기 때문입니다.”(츠빙글리, 『저작 선집 2』, 228)
츠빙글리는 결론적으로 성경연구와 교부학 공부를 통해 성인들의 중보기도가 비역사적이며, 비성경적이라고 못 박는다. 특히 중세교회가 성인중보기도의 근거를 몇몇 교부들의 글에서 가져오고 있는 것에 대해 츠빙글리는 전혀 동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첫째, 성경이 성인중보기도를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둘째, 성인중보기도에 대해 교부들은 ‘아주 조금 언급하거나 또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셋째, 만약 어떤 교부가 성인 중보기도에 대해 말할지라도 ‘전혀 설득력이’ 없는데, 이유는 그들이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만약 교부들이 성인 중보기도에 대해 성경구절을 근거로 제시하는 경우, 원문으로 이해할 때 “그들이 주장하는 뜻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다섯째, 교리화 되었을 경우, 성경적 뒷받침이 없다. 도리어 그들이 내세운 교리와는 반대되는 성경구절만 발견할 수 있다.(츠빙글리, 『저작 선집 2』, 268-269)
주도홍 교수의 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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