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는 지난 8일부터 이달 말까지 아주 특별한 그림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밀알복지재단이 지원하는 성인발달장애인 미술교육지원 사업 ‘인 블라썸(in blossom)’에 소속된 작가 9명의 작품 27점이 일반에 선보인 것.
‘그림으로 세상에 나오다 2’를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들은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특정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른바 서번트 증후군 작가들이다. 개성 가득한 그림들 중 작품 ‘내 친구 포뇨’가 보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관람객들은 고양이 포뇨가 가만히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눈길에 자신의 눈을 맞춰본다.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함이 그림에서 묻어난다.
그림은 지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권한솔 군(22)이 아끼는 고양이를 직접 그린 것으로, 그림 곁에는 권 군과 함께 어머니 김경희 권사(부천 성만교회)가 함께했다. 계속해서 아들과 대화하며 소통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인상 깊다. 아마도 아들의 재능은 모성에 의해 발견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김경희 권사는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한다.
그림 속에 나타난 한솔 군의 세상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시고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말씀하셨네. 하지만 그 어떤 세상보다 그 어떤 만물보다 하나님 가장 기쁨은 날 만드심이라.”
찬양 가사처럼 하나님은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도 기꺼이 기쁨으로 창조하셨다.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존재이다. 하지만 세상의 시선은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편견 앞에 가족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은 권한솔 군이 전시회를 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지만, 지난 세월 어머니 김경희 권사는 아들을 위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기울여야 했다.
지난 19일 부천 중동 ‘문화예술대학’에서 김경희 권사와 한솔 군을 직접 만났다. 문화예술대학은 김경희 권사와 남편 권혁신 안수집사가 설립한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학교이다.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발달장애인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 부모는 아들 뿐 아니라 다른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평생교육 학교를 직접 설립한 것이다.
문화예술대학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많은 그림이다. 특히 복도에 내걸린 권한솔 군이 그린 다양한 성화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권 군은 지적장애 1급이다. 자신만의 세계 속에 머무를 때가 많은 권 군에게 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깊게 남아 있다는 증거가 그림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지금은 편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처음에 우리 한솔이가 장애가 있는 걸 알았을 때는 꿈인가 생시인가 했어요. 믿지도 않으려고 한 시기도 있었죠. 지금은 우리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 뿌듯합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패턴 그림으로 주목받는 작가지만, 오히려 사람과 동물이 나오는 편안한 세상을 그렸으면 합니다.”
어머니는 주목받는 작가보다 평범한 삶을 살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신의 공간이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와 소통하길 바라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간혹 하루에 4시간씩 한 작품에 몰두하고 있는 한솔 군에게 일부러 엄마가 개입해 전환을 유도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세상 밖에서 방치되지 않는 삶
권한솔 군은 어머니로부터 예능 실력을 물려받았는지 모른다. 사실 김경희 권사는 젊은 시절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다.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성장했던 김 권사는 우연히 부천지역을 찾았다가 피아노학원을 열게 됐다.
당시 김 권사의 눈에는 열악한 교육환경에 있던 지역 내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 것. 교육으로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재미에 밤낮없이 일했다. 그러는 사이 첫째 권별, 둘째 권한솔 두 자녀를 낳았다.
“부모교육을 일찍 받아야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돌보는 분에게 한솔이 맡겼는데, 무서운 환경에 있었거나 애착을 가질 수 없는 환경에 놓일 때가 많았어요. 결국 한솔이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자신을 닫아버리고 혼자만의 세계로 도망가 버렸고, 저희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죠.”
한솔 군이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은 아버지가 발견했다. 처음에는 장애를 인정하지 않았다. 남의 자식 돌보느라 내 아이를 잘 키우지 못했다는 자책도 했다. 제발 장애가 아니길 바라며 끝없이 기도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보통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환상처럼 꿈으로 다양한 응답을 해주셨는데, 유독 우리 아들과 관련해서는 아무 것도 안보여주셨어요. 딱 한번. 꿈에서 ‘어머님 은혜’를 노래로 부르는데, 그때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라는 각오를 하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자기 세상에서 나와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는 손발이 돼 주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 2년 동안 복도에서 같이 배웠고, 누군가를 때리기라도 하면 수도 없이 빌어야 했다. 다행히 중고등학교에서 좋은 교사들을 만난 것도 참 은혜였다.
“특히 심원고 특수반에서 한솔이를 가르쳐준 김기원, 김민경 선생님이 지금도 너무 고마워요. 이런 분들이 있어서 발달장애 아이들이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특수반을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라 교육당국과 국민들이 이런 선생님들의 노고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아버지 권혁신 안수집사는 “우리 아이들이 방치되지 않는 삶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 일을 한솔이에게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한솔 군을 위해 집안에 작은 수영장 같은 큰 욕조를 만들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아빠가 보여준 또 하나의 사랑이다.
이웃과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내기
미국에서 MBA를 하고 대기업을 다니던 아버지는 한솔이 양육을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살아가고 있다. 일부 아버지들은 자녀의 장애를 받아들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때론 무관심하게 방치되면서 자녀의 장애가 퇴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족의 지지가 그 만큼 중요하고 이웃들과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
한솔 군은 동네 안에서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병원을 다니고 상가를 직접 다니면서 꾸준히 부모가 교육한 결과 발달장애를 가진 한솔 군을 이웃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장애 아이들이 시설에서 평생을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 주거지역 안에서 이웃들과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 부모가 훗날 남겨질 아이를 위해 주는 최선의 선물이 아닐까.
“친인척의 지지를 받지 못해 외롭고 힘든 부모들도 있습니다. 부모와 장애를 가진 자녀가 절망 같은 터널에서 나올 수 있도록 주변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그런 생각을 해요. 더럽고 어두운, 끝이 보이지 않는 하수구 끝에 내 아이가 있는데, 그 절망의 끝을 향해 기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고요. 그래서 포기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내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존중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어머니 김경희 권사는 오늘도 아들 한솔 군과 함께 산책을 나간다.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가는 길을 만들어주시도록 기도하며 세상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