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종교개혁사 ⑪ 교회의 권리와 권한에 대하여(15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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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종교개혁사 ⑪ 교회의 권리와 권한에 대하여(1523년)
  • 주도홍 교수
  • 승인 2017.11.1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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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홍 백석대학교 부총장/역사신학

종교개혁은 이제 새로운 질서를 세워나가야 했다. 사람들은 종교개혁의 실행에 대해 종교개혁자 루터에게 물었다. 교회를 어떻게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지, 교회가 어떤 일을 해야 하며, 할 수 있는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자 했다. 한 예로, 1522년 가을 독일 작센 주에 있는 라이스니히(Leisnig) 교회는 종교개혁자의 뜻에 따라 교회생활을 새로이 형성하기를 원했다. 비텐베르크교회가 앞서 경험해야 했던 혼란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1523년 1월 이에 루터는 세 가지를 가르쳤다. 첫째, 교회는 모든 교리를 판단한다. 둘째는 교회는 선거를 통해 목회자를 청빙할 수 있고, 파면할 수 있다. 셋째, 이는 신약 성경에 근거한다. 루터의 입장은 지금까지의 중세의 전통과 교회법에 반하는 새로운 것이었다. 독일 교회사가 하르낙(A. Harnack)은 종교개혁을 ‘교회법과의 단절을 가져온 혁명’으로 묘사하였다.

당시 라이스니히 교회는 선거를 통해 새 목사를 선출했는데, 루터는 이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며 글을 썼다. 이 글에서 루터는 로마교회를 연상하게 하는 독일어 교회를 일컫는 키르헤(Kirche)보다는 성도들의 모임 또는 공동체를 뜻하는 게마인데(christliche Gemeinde)를 가져왔다. 루터에게 교회의 정의는 중요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교회 공동체는 순전한 복음이 선포되는 곳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복음이 살아있지 못하고 인간적 교리만 난무하는 곳은 결코 교회일 수 없다. 교회는 교리를 판단하는 일 그리고 교회 교사와 목회자를 부르고 가게 하는 권한을 갖는데, 인간의 영혼은 영원한 것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으로만 다스려지고 무장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인간의 교리, 말, 법, 권리, 출신, 관습, 전통 등으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교황, 공회, 주교, 제후 그리고 모든 세상이,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시행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기준이 될 수 없다. 무엇이 기독교적이고, 이단적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양들은 주님의 음성을 알지만(요10:27),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함으로 도리어 도망한다(요10:5).

주교, 교황, 학자 그리고 모든 성도가 가르칠 권한을 위임받았다. 그러나 양들은 과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음성을 가졌는지, 아니면 타인의 음성을 가졌는지를 마땅히 판단하여야 한다. 곧 우리 주님이 마태복음 7:15절 이하에서 말하는 대로,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실질로는 노략질하는 이리인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는 일이다. 루터는 판단의 주체가 양들이라는 사실, 가르침을 받는 회중 가운데가 아니라, 단지 선생들 가운데 거짓 선지자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기에 모든 선생들은 자신의 가르침을 회중의 판단에 마땅히 맡겨야 한다. 동시에 회중들은 마땅히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해야”(살전5:21) 한다. 지금까지 중세교회에서는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는 일반 교인들이 수동적인 자세만을 취하였다면, 이제 회중의 적극적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루터는 깨우치고 있다.

루터는 세례 받은 모든 성도의 영적 제사장 됨을 외치며, 그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의 책무를 신약의 수많은 성경 구절을 제시하며 주지시킨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영적 사제로서 그 어떤 인간적 부름과 상관없이 회중 앞에 나서서 가르칠 수 있고,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이 다른 길로 갈 때는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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