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종교개혁사 ②숨어계신 하나님-루터의 하이델베르크 논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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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종교개혁사 ②숨어계신 하나님-루터의 하이델베르크 논쟁(중)
  • 주도홍 교수
  • 승인 2017.10.1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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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홍 백석대학교 부총장 / 역사신학

종교개혁 초기 1518년 「하이델베르크 논쟁」에서 종교개혁자 루터가 말하고자 하는 두 가지는 명료하고 분명했다. 오직 믿음과 십자가의 신학이었다. 인간 타락 후 자유의지로 행하는 모든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죽음에 이르는 죄일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여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을 통해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한다. 곧 이신칭의다. ‘십자가의 신학’은 ‘영광의 신학’에 반대되는 새로운 신학으로서 루터 신학의 근본이다. 

토론문의 19항 이하에서 십자가의 신학은 루터의 사상의 엑기스로 중세교회를 영광의 신학으로 정죄하며 제시된다. “보이지 않는 실체이신 하나님을 그의 보이는 업적을 통해 인식하고 이해하는 자를 신학자라 부르는 것은 가치 없는 짓이다.(롬1:20; 고전1:21~25)”(19항) 루터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이해하여 얻은 지식이 신학이라고 할 때 신학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신학은 하나님이 자신이 계시하고 보여주고 가르칠 때 형성되는 것인데, 어찌 신학자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붙일 수 있다는 말인가! 반문한다. 

루터는 부연하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그의 능력과 신성, 그의 지혜와 공의 그리고 선하심을 통해 인식하는 것은 가치 있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가장 낮은 자로 오셔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리스도는 인성, 약함과 어리석음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셨다. 곧, 하나님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약함(고전1:25)이다. 하나님은 볼 수 없는 것들의 지혜를 하나의 볼 수 있는 것의 지혜를 통하여 물리치셨다. 

고전1:21이 말하는 대로,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그런즉, 십자가의 낮아짐과 약함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영광과 권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다.”(고전1:19)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시나이다.”(사45:15)   

바로 이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신학자야말로 진정한 신학자이다. 그렇지만 영광의 신학자는 나쁜 것을 좋다고 좋은 것을 나쁘다 일컫는다. 영광의 신학은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요14:8)라고 한다. 그렇지만 십자가의 신학자는 실재 있는 그대로를 인식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 진정한 신학과 진정한 신인식이 있다. 영광의 신학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그 뭔가 업적을 통해 부풀리고 눈멀게 하고 결국은 썩게 한다. 그래서 율법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고(롬4:15) 죽이며, 저주하고 고소하며 심판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아니한 모든 것들에게 벌을 내린다. 

인간은 십자가의 신학 없이는 최선의 것을 최악의 것으로 거꾸로 오용한다. 인간은 그 무언가 선한 업적을 많이 행하므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공로 없이 확실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워진다. 율법은 그것을 행하라 말한다. 그렇지만 결코 그렇게 된 적은 없다. 은혜는 ‘너는 마땅히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모든 것을 이루게 된다. 그렇다면 마땅히 지금도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업적을 말하고, 그런 후 우리의 행한 일을 생각하고 그로 인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그 공로에 힘입어 이미 이루신 일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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