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목사 사역 1년도 안 돼 개척 시작
“하나님은 더디지만 감격적으로 이끄신다”
교회로 찾아간다고 하니 굳이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시간에 맞춰 나가니 만나서 가야 한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걷기에는 애매한 거리. 그리고 교회를 알리는 표지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그래서 찾을 수 없는 교회였다. 카페를 빌려서, 그것도 주일 저녁에만 예배를 드리는 교회였기 때문이었다.
# 카페 빌려 드리는 주일 예배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뒤 효창공원 근처에 자리잡은 카페 몽루. 빛되신주교회(담임:김남윤 목사)가 있는 곳이다. 당연히 교회의 모습은 아니다. 손님을 위한 몇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는 넓지 않은 크기. 빛되신주교회는 이 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일 저녁에만 교회로 탈바꿈한다. 그렇다고 요란한 탈바꿈도 아니다. 작은 현수막 하나 걸고 예배를 드릴 뿐이다.
정말 교회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강대상 하나 없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테이블 몇 개를 붙여놓고 앉으면 모든 게 해결되는 그런 교회다.
개척으로의 부르심은 갑작스러웠다. ‘언젠가는’이라는 막연함은 있었지만 준비한 것도 아니었다. 서울 마포의 A 교회 부목사로 부임한 그 해 1월, 하나님께서는 새벽기도 중 개척의 길로 이끄셨다. “예전부터 개척에 대한 소망은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아무 준비도 없는데,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개척에 대한 마음을 주실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길을 보여달라’고 기도했죠.”
기도에 대한 응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개척하라”는 것뿐이었다. 이 응답이 계속됐다. 그래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아무 준비가 안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막상 준비할 것도 없었다. 교회의 지원도 없었고, 가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건 ‘강한 믿음’이었다. 그러기를 10개월. 김 목사는 개척을 실행했다. “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목회자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신도림역에서 운영하는 문화공간의 운영을 담당하게 된 사람이었고,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일산에서 카페 교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큰 도움이 됐다. 한 사람은 유치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었고, 또 한 사람은 빛되신주교회가 지금 이 카페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주었다.
# 엄마 손을 잡고 온 첫 신자
하지만 김 목사는 이 곳에서 지난 5개월여 동안 혼자 예배를 드렸다. 아무도 찾지 않았다. 누구도 교회로 보지 않았고, 전도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김 목사는 혼자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설교하면서 보냈던 시간이 오히려 더 유익했다고 말한다.
“혼자 예배하는 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개척하고 순종하고 예배하는 그 시간이 정말 좋았습니다. 사람이 없어서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곳에서 마음을 다 쏟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면서, 예배자로 온전히 홀로 설 수 있었던 것에 더 감사했고, 예배가 무엇인지를,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처음 교회에 온 사람은 불신자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내의 미술학원 후배가 데리고 온 딸이었다. 성인 예배를 드리는 숙대 쪽이 아니라 유치부 예배를 드리는 신도림역이었다. “이 아이의 엄마는 교회 자체에 대한 불신, 예수 믿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아는 언니가 교회를 개척했다고 하니, 일요일에 집에 있느니 밖에 나가서 놀고, 교회도 그냥 한 번 가보자’ 하는 생각으로 나왔던 거죠.”
교회에 들렀지만, 주일에 일이 있으면 못 나오고, 일이 없으면 나오고 그랬다. 이렇게 신도림에서 유치부 예배가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와 엄마가 변했다. 주일에 하는 일 때문에 아이를 교회에 보내지 못할 상황이 되면 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아르바이트 나가는 걸 포기하고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 집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그렇게….
“어느 날 이 분이 ‘나는 지금도 교회가 싫다. 그런데 여기(빛되신주교회)는 좋다’는 말을 하더군요. ‘교회 같지 않아서 좋다’는 이유였죠. 그리고 지난 여름성경학교는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유치부 예배에 참석하는 이 아이가, 시켜도 하지 않던 ‘예수님 사랑해요’라는 말을 따라 하고, 함께 기도하게 된 거죠.”
# 교회 같지 않아서 좋은 교회
빛되신주교회는 주일 예배를 저녁에 드린다. 다른 교회는 모두 오전에 드리는데 이 교회는 유독 저녁 7시다. 그나마 저녁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도 카페를 운영하는 집사님의 배려 때문이다. 카페가 문을 닫은 후 예배는 시작된다.
그렇다고 숫자가 0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더디지만 0에서 1로, 1에서 2로, 4로 계속 바뀌어갔다. “예전에 악기를 가르쳤던 학생의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놀랐죠. ‘개척 소식을 들었다’며 ‘지금은 교회 출석을 쉬고 있는데 와보겠다’고 했고, 약속대로 여기로 나왔습니다. 성인 멤버 1호였습니다.”
이게 시작이었다. 혼자서 드리던 예배가 두 사람으로 늘어났고, 신도림에서 유치부 예배에 참석하는 아이의 엄마가 이곳 예배에도 참석하겠다고 했다. 첫 전도는 부활절에서야 할 수 있었다. 평일은 물론 주일에도 영업을 하는 곳이어서 전도를 할 수 없었지만,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예배 1시간 전인 오후 6시부터 빵과 주스를 나누면서 이웃에게 부활의 기쁨을 전했다. “교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빛되신주교회’라고 쓴 현수막만 카페 앞에 걸어놓고 나누어드렸죠.”
그날 저녁. 한 청년이 교회 앞을 서성였다. “교회에 들어오실 거냐?”고 물었더니, “여기 교회가 어디 있어요? 2층에 있어요?” 하며 발을 들여놓았다. 청년 멤버 1호였다. 그리고 카페 사장님이 단골로 오는 남자 청년에게 교회 출석을 권고했고, 이 청년이 2호 멤버로 함께했다. 이렇게 한 사람, 두 사람 교회로 왔다. 하나님은 더디지만 감격적으로 이끄셨다.
카페를 빌려서 하는 개척과 목회. 굳이 말하지 않아도 힘든 건 뻔하다. 하지만 김 목사는 “숫자로 말하는 성장에 집착하지 않아서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처음 가졌던 마음과 다짐이 무너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김 목사에게 성장은 변화와 회복이다. 예수를 모르던 사람들이 예수를 알고, 교회를 떠났던 사람들이 예수의 품 안으로 돌아오고, 교회를 싫어하던 사람들이 “이런 교회 처음 봤다. 교회 같지 않아서 좋다”고 말하는, 이런 현재가 김 목사에게는 성장이다.
그렇다고 김 목사가 건물 교회를 마다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작은 교회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이제 10명 남짓이지만, 50명이 되면 교회를 분립시켜 건강하게 확산시킬 계획이다.
# 생활비는 주중 아르바이트로 조달
빛되신주교회에는 없는 게 많다. 건물이 없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없어도 1~2명은 있다는 개척 멤버도 없었다. 아내와 여섯 살 아들 두 명뿐이었다. 이러다 보니 음향시설은 고사하고 재정 후원마저 없다. 김 목사는 “그래서 일을 해야 한다면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일주일에 2~3번 정도의 아르바이트로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한다. 어느 일이건 가리지 않는다. 이걸로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도 막중하기 때문이다.
없는 게 많은 교회이지만 다른 교회보다 넉넉하게 있는 것들도 있다. 무조건 순종하고 나섰던 믿음, 하나님이 주신 말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빌려준 장소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넉넉하지만, 사실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김 목사의 고백이다.
하지만 한 가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있다. 중보기도. 김 목사는 교회는 무릎으로 세워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중보기도를 요청한다.
지난 8월 19일 토요일, 빛되신주교회 구성원 모두 난지공원으로 소풍을 다녀왔다. 교회 설립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다. 모두 12명. 고기를 구웠고, 음식을 나누었다. 주 안에서 나눈 사랑의 만찬이었다. 8월 27일 저녁 7시 주일예배 때는 교회 앞에서 버스킹을 했다. 모든 교인들이 참여했다. 여섯 살 아들도 함께였다. 집사님은 김밥과 샌드위치를 만들어왔고, 젬베와 베이스 앰프에 베이스 기타를 들고 왔다. 거기다 남편까지…. 부활절 전도 때 빵을 받고 교회를 찾았던 여성 청년은 두 곡을 솔로로 부르고 코러스에도 참여했다. 교회 출석 4주차가 된 남성 청년은 동영상을 촬영해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했다. CCM 사역자 히엘이 춘천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저녁 8시에 합류해 준 것도 기적 같은 일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진행하셨습니다. 또한 우리 성도들은 발벗고 앞장서서 도우며 귀한 동역자가 됐습니다. 목회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목회자가 선동해서도 안 됩니다. 저는 그런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저 본을 보이고, 영적 가르침을 주고, 좋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고, 성도들은 훌륭한 동역자가 되는, 그런 목회, 그런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