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근로-폐지 줍기 어르신들과 지역 목회
교인들 위한 승합차-식당 창업 위해 기도
최정욱 목사. 서울 영등포에 빌딩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노숙자였고, 지금, 신림동에서 공공근로를 한다. 여름이면 악취가 진동하는 썩어가는 음식 쓰레기를 치우고, 폐지를 주워 파는 어르신들을 섬기는 목회를 한다.
신림동 상가건물 지하에 세 든 구원의우물들교회. 하지만, 없이 사는 사람들이 존경 받고, 사람 대접을 받는 교회다. 그리고 예수 때문에 행복해하고, 예수 믿는 것을 즐거워하는 교회다.
# 안 오면 내가 간다
구원의우물들교회는 최 목사 부부의 사글세 단칸방에서 시작됐다. 그렇다고 교회를 개척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 ‘특별한 곳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에서 복음이 시작돼야 하고, 복음은, 목사는 늘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최 목사의 생각 때문이었다. 부부가 예배를 드리는 단칸방에 공공근로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찾아 들면서 그 방이 비좁아졌다. 어디로든 옮겨야 했다. 그 때 찾은 곳이 집에서 멀지 않은 건물의 지하. 월세 70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어야 했지만, 교회를 시작했고, 사택도 함께 옮겼다.
사택이라고 해봐야 예배실 한쪽을 커튼으로 가린 공간이 전부. 그나마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면 허리를 잔뜩 굽혀야 들어갈 수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허리를 굽히고 들락거려야 하는 곳이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묵묵히 따라주는 아내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창문도 없고 공기가 탁해 비염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기쁨으로 1년째 살고 있습니다.” 최 목사는 아내에게 늘 미안하다. 하지만 여느 잉꼬부부가 무색하리만치 닭살부부이기도 하다.
개척 교회 목회자들의 고민 중 하나인 전도. 최 목사는 쉽게 생각하고 접근한다. ‘안 오면 내가 찾아간다.’ 그래서 교회 밖에서 사람들을 직접 만난다. 매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신림역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1회용 마스크를 나눠주며 직장인들을 만나고, 이후에는 동사무소에서 공공근로자들과 교회 옆 고물상으로 오는 어르신들을, 한낮에는 신림천에서 주민들을 만난다. 두 손 가득히 아내가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챙겨가는 것도 잊지 않고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들을 만날 때면 하는 말이 있다. “어르신들, 교회 안 오신다고 강짜 부려도 소용없어요. 왜냐구요? 안 오시면 최 목사가 샌드위치 들고 찾아갑니다!” 강짜처럼 들리지만, 이게 최 목사의 섬김이고, 안 온다고밖에 대답할 수 없는 이들의 처지와 형편을 아는 최 목사만의 배려요 전도법이다. 한낮 땡볕도 마다 않고 매일 전도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던 한 교회에서 보내온 파라솔 구입 비용 20만 원은 이런 최 목사 부부를 응원하고 힘 내게 한다.
# 섬김이 곧 구제사역
최 목사는 3년 정도 공공근로를 했다. 하지만 올해는 탈락했다. 그렇다고 아쉬워하거나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 나보다 더 애절한 사람이 그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동사무소로 찾아가 공공근로자들을 만난다.
“제가 공공근로 선밴데 후배님들께 오늘 점심식사를 대접하려고 왔습니다.”
공공근로자 6명과 동네 식당에서 삼계탕으로 점심을 함께 하고, 식사 후에는 교회에서 다과와 함께 교제를 나누며 전도했다. “이게 제가 전도하는 방법입니다. 목사인 제가 공공근로 선배라는 말에 마음을 여시더니 그 중 몇 분은 교회에 나오겠다는 대답도 해주셨습니다.” 이들이 돌아갈 땐 인천의 모 교회가 후원한 10킬로그램짜리 쌀도 한 포대씩 안겨주었다.
공공근로를 했고, 온갖 잡일을 해야 하는 개척 교회 목사는 바쁘다. 어느 목회자나 그렇지만 24시간 대기모드. 겨울이면 집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을 뒤덮은 얼음을 깨 달라는 전화에 달려 나가야 한다. 단칸방에서 탈출해 이사를 가는 교인이 있으면 리어카로 짐을 실어 날랐고, 여름이면 악취를 풍기는 음식 쓰레기를 누구보다 먼저 치웠다. 이런 일들 모두가 고스란히 최 목사의 몫. 하지만 작은 개척 교회를 섬기는 담임 목회자로서의 유익이 있다고 말한다.
“교인들 대부분이 기초생활 수급자이거나 파지를 주워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굳이 구제사역을 할 곳을 찾지 않아도 우리 교인들을 잘 먹이고 잘 섬기면 그것으로 구제사역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을 보면서 재정적 도움을 기대하지 않게 돼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기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최 목사는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자신이 노숙자였고, 예수를 처음 만나고 경기도의 한 기도원에서 2년여 동안 허드렛일을 하면서 탕자처럼 지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세차 일도 하고 아내는 마트에서 계산원 일도 했다. 이런 일들이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섬기게 하는 발판이 됐다.
그래서 구원의우물들교회의 살림은 ‘빠듯하다’는 말을 해보고 싶을 정도로 열악하다. 한 달 필요 경비 2백여만 원의 대부분이 후원으로 채워진다. 자체 충당된 적은 없다. 교회 월세 70만 원, 공과금 40여만 원, 거기다 쓰기에도 모자란 상황에서 60만 원은 해외선교로 지출한다. 쪼달리는 살림, 어르신들이 가득한 이 교회에서 최 목사는 세상과 소통하고 목회한다.
# 두 가지 기도 제목
구원의우물들교회에는 없는 게 하나 있다. 승합차. ‘요즘 승합차 없는 교회가 어딨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흔하다는 승합차가 없다. 이 때문에 어르신들이 나들이를 하거나 차량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발을 동동 구르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올해 안에 승합차를 마련하는 게 최 목사의 두 개의 기도 제목 중 하나.
지난 10일 있었던 교회 어르신들의 과천 서울대공원 나들이도 지하철로 다녀왔다. 이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만수 할아버지와 정옥남, 정오훈 씨를 비롯한 몇몇 교인들이 함께 하지 못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1인 분에 15,000원씩 하는 갈비를 12인 분이나 먹고 후식으로 냉면까지 뚝딱 해치우는 어르신들의 행복한 웃음을 보면서 위로했다.
“한평생 가난과 설움으로 살아오신 형님, 누님(최 목사는 교회에 출석하는 어르신들을 이렇게 부른다)들이 식당을 나오면서 이구동성으로 ‘예수 믿으니까 살맛 난다’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교회 재정이 거덜난대도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데 어린 아이들처럼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노라니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또 하나는 ‘식당 창업’. 최 목사 부부의 생활을 위한 게 아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어르신들에게 직장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우리 교회 근처에 유명 설렁탕집이 있는데, 거기 사장님이 우리 교회의 사정을 듣고 흔쾌히 비법을 전수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바람대로 식당을 창업하면 공공근로와 폐지 수집 등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어르신들이 마음 편하게 일하실 수 있게 됩니다. 이 분들이 기쁨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십시오. 이 바람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최 목사는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한다. 교회 성장이 목표인 시대. 하지만 성장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기도, 지역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한 기도 그 자체가 복음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