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는 조만간 헐버트 선교사의 문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조선시대에 헐버트 선교사가 쓴 논문 및 기고문 52편이다. 헐버트기념사업회에서는 최근 성행하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와 관련해 헐버트 선교사가 130년 전 기고한 글 하나를 소개했다.
헐버트 선교사는 1886년 7월 5일, 조선에 도착했을 당시 서울에 만연해있던 콜레라의 참상을 보고 견딜 수 없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리고 모든 나라가 전염병에 미리 대비해야 하고, 전염병으로 인한 악재가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미국 신문에 다음의 글을 기고(7월 29일 작성)했다.
“(1886년) 7월 15일부터 25일 사이에 도성 안에서만 3,140명이 죽었다. 이때 정부가 내린 유일한 조치는 시체를 내다버릴 수 있는 두 개의 문에 관리를 파견해 시체의 숫자를 세는 일이었다. 콜레라로 죽은 사람의 시체는 모두 죽은 당일 바로 치워졌다. 3,140명의 사망자는 도성 안의 숫자였으며, 도시 전체 사망자의 절반에 해당된 숫자였다.
도성 밖의 사망자도 엄청났다. 열흘 동안에 서울에서 콜레라로 죽은 사람만 하루 평균 628명, 도합 6,280명이다. 절대 과장이 아니다. 26일 하루에만 보고된 도성 안 사망자는 460명, 도시 전체로는 920명이다. 27일에는 842명이다. 18시간 동안에 1,762명의 장례를 치렀다고 상상해보라.
당신은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른다. 왜 그들은 콜레라를 피해 도망가지 않았냐고? 도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정부의 업무는 마비되었다. 무엇에도 희망을 걸 수 없는 상황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정부의 모든 부서는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다. 남자, 여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콜레라가 그들을 죽이든지 살리든지 그저 기다리고만 있다. 20건의 발병 중 19건이 치명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콜레라 자체는 그렇게 치명적인 병이 아니다. 잘 보살피고 치료를 서두르면 치사율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인들의 관습이 희생을 반으로 줄일 수 있는 희망을 앗아갔다.
조선인들은 사람이 집 안에서 죽는 것은 매우 불길한 징조라는 미신을 굳게 믿었다. 따라서 사람이 아프면 아픈 사람을 날씨와 상관 없이 문 밖으로 내친다. 병자는 짚으로 만든 거적에 누워 있거나, 거적도 없이 맨땅에 방치되기도 한다. 그들은 뜨거운 햇볕이나 대기에 노출되어 병세가 더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약을 주거나 정성어린 치료로 병자를 돌보아야 할 시점에 병자는 오히려 죽음의 턱밑으로 내몰린다.
어제 아침 나는 소의문에 가 매장을 위해 성 밖으로 치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시체를 목격했다. 일일이 시체를 세어보니 100여구가 되었다. 이어서 소의문 밖을 지나며 이 지역 전체가 공동묘지로 변한 것을 보았다.
언덕 꼭대기까지 모든 땅이 묘지였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참상이 있으랴. 급하게 매장을 하다 보니 매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관도 없고, 시체는 맨땅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채 한 줌의 모래로 살짝 덮여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개와 새들이 시체를 서로 먹으려고 다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