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가 아닌 개신교 선교사로 조선땅을 처음으로 밟은 사람은 독일 태생의 귀츨라프였다. 귀츨라프 선교사는 런던에서 중국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작정했다.
그는 네덜란드선교회 소속으로 여러 지역을 거쳐 마카오에 도착했고, 이후 동인도회사 여행 제안을 수락하고, 1832년 7월 황해도 장산곶에 도착했고, 이어 충청도 홍주만 고대도 앞에 정박했다.
그는 이곳에서 지방관리들을 접촉을 시도했고, 실제 배에 탑승한 조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문서를 나눠주었다. 비록 관리들이 일반 백성들과의 접촉을 막았고, 중앙정부가 교류를 차단하면서 제대로 된 교류가 이뤄지지 못했지만, 귀츨라프는 한달 남짓 머무는 동안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전도문서와 성경을 나눠주었다.
그의 항해기 중에는 조선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구세주라는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주민들이 무관심했다고 아쉬워하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그는 나누어준 성경을 통해 복음의 열매가 맺힐 것을 확신했음을 그의 기록에서 엿볼 수 있다.
“이 모든 사건들을 내가 기도로 간구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뤄주신 것으로 생각하여 감사한다. 조선에 뿌려진 하나님의 진리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없어질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주님께서 예정하신 때에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가장 낮은 서민들도 글을 읽을 수 있고, 읽고 좋아하는 것을 알 때 아주 재미있었다. 그들은 다른 종교가 들어오는 것을 질투하리만치 편협한 것 같지 않았다. 이 나라에는 종교가 거의 없는 것이 명백하여 우리는 용기를 내어 복음을 전파할 궁리르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쇄국정책을 거둬 약속된 이 땅에 복음이 들어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귀츨라프 항해기 中
귀츨라프의 기도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없는 세상을 살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