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개신교가 전래될 당시, 선교사들이 가장 먼저 전개한 사역의 하나는 의료분야였다. 당시 복음전도를 곧바로 실시할 수 없었던 조선의 시대적 상황 때문에 더욱 선교사들은 교육선교와 함께 의료선교에 더욱 열심을 쏟았다.
1884년 이미 미 공사관 소속의사 자격으로 입국한 알렌 선교사. 그는 1885년 고종의 신임을 얻어 최초의 근대식 병원 광혜원을 설립했다. 광혜원은 명칭을 제중원으로 바뀐 가운데 선교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배경이 돼 주었다.
이후 1894년 에비슨 선교사는 미국인 실업가 세브란스의 후원을 받아 제중원을 지금의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전해 발전시켰고, 여기에서는 의사와 간호사 등 조선인 의료 인력도 조금씩 양성해 갔다. ‘간호원’ 명칭은 1903년 에드먼즈에 의해 ‘보구여관’에 ‘간호원 양성학교’를 설립하면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재미있는 것은 초기 간호사들은 남녀구분이 엄격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남성들을 간호하기를 꺼려했고 실제 간호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에비슨 선교사는 어떻게 간호사들이 남성 간호를 시작했는지 기록했다.
1907년 8월 1일 일제가 조선 군대를 강제해산하는 과정에서 시가전이 벌어졌고, 이 때 부상을 당해 병원에 실려온 조선 군인을 제중원 간호사들이 돌본 것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발간한 ‘기독교 조선에 살다’에서는 “사회적 관습을 뛰어넘는 전문인 여성이 탄생하는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에비슨이 회고한 내용이다.
“그들은 모여들어서 부상병들이 누워있는 것을 구경만 하더니, 그들이 바로 자기들과 민족을 위해 싸우다 부상당해 쓰러져 있다는 사실은 깨달았다. 그 중 한사람이 오랜 인습을 깨뜨리고 부상자를 돌보려고 나서자 모두가 따라 나섰다. … 간호사들은 그날 밤새도록, 그리고 그 다음날도 종일 부상병을 간호했다. 그 때서야 그들은 자신들이 간호한 것이 남성환자였다는 것을 알았다. 한번 해 본 이상 또 다시 못할 것도 없었다. …떠나는 병사들도 울고 보내는 간호사들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