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을 찾아 본격적인 선교에 착수한 직후부터 많은 한국인들은 강력한 복음 수용을 느꼈다.
정부의 수구정책이나 선교사들의 신중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신앙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국인 교인들의 노력은 초기에 이미 결실을 맺고 있었다. 이는 선교사들이 도착하자마자 지방에서 교인들이 세례를 받겠다고 자진해서 찾아오는 현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이뤄진 첫 개신교 세례는 1886년 7월 18일 주일에 베풀어졌다. 알렌 선교사의 통역으로 일하던 노춘경이라는 사람이었다. 신앙의 결단을 한 노춘경은 교리문답을 거쳐 언더우드 선교사의 집례와 아펜젤러 선교사의 보좌로 세례를 받았다.
언더우드를 비롯한 선교사들은 이 ‘첫 열매’에 감격했다. 더욱이 노춘경이 본인 외에도 고향에 세례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더 있다는 소식을 전하자 선교사들은 크게 고무되었다.
이처럼 초기 선교사들은 자진해서 찾아 오는 한국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주었다. 그리고 1887년 9월 27일 서울 정동 언더우드 사택에서 14명의 세례교인으로 한국 최초 조직교회로 ‘정동교회’가 창설됐다. 한국의 첫 조직교회는 그 구성원이 선교사들의 복음 전도에 의해서가 아닌 한극인 전도인의 전도에 의해 개종한 교인들이었다.
이는 자발적 세례교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후에도 계속 세례지원자들이 지방에서 올라와 1887년 말에는 25명의 세례교인이 생겨났다. 다음의 글을 통해 언더우드가 말하는 당시 한국인들의 종교적 열성을 엿볼 수 있다.
“누가 봐도 교회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상당수의 세례지원자들이 있는데 모두 남성들로 열심있어 보인다. 한국인들이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북에서, 남에서, 동에서 요청하고 있지만 학교일 때문에 갈 수가 없다. 우리는 지금 이곳 서울에 매서인 한 명과 전도인 한 명을 두고 있다. 곧 한 사람 더 평안도 지역에 보낼 예정이며 서울에 있는 매서인은 남쪽에 보낼 예정이다. 백성들이 점점 더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언드우드, ‘First Church in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