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쇄국정책으로 외국의 선교사들은 한국에서 직접 선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영국 로스 선교사(John Ross)는 머지 않아 한국 선교의 문이 열릴 것을 믿으며 중국 만주에서 선교하며 성서공회의 지원을 받아 한글성경 번역 사업을 추진했다.
로스 선교사는 유식한 한국인이었던 이응찬의 도움을 받아 1877년부터 10년간 성경을 번역해 신약전서인 ‘예수셩교젼서’를 간행한다. 이를 통해 한국 선교의 앞날을 내다본 로스 선교사의 신앙적 안목과 그 일에 피땀을 쏟았던 수많은 선조들의 노고를 엿볼 수 있다.
로스 선교사가 한글성경을 번역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흑암 아래 사는 조선 1,200만여 영혼에게 성경을 전해야 한다는 강렬한 사명감을 가지고 선교의 문이 열릴 때를 바라보며 번역에 임했다. 여기에 한글의 우수성이 번역을 촉진시키기도 했다. 즉 한문이 극소수 학자층에게만 이해되고 있음에 비해 민중의 언어인 한글은 습득이 용이하고 번역에 있어 한문보다 훨씬 정확했기 때문이다.
번역은 준비기를 거쳐 1877년부터 1886년까지 계속됐다. ‘예수셩교젼셔’가 완역될 즈음에는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났다. 한국에서 많은 학자들이 찾아와 번역을 도왔고, 세례를 요청하기도 했다.
“학자들은 얼마 전에 이곳에 왔는데 기독교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례를 받기 위해서였다. 기독교의 근본에 대한 그의 지식은 완벽했으며, 한 달간의 시험을 거친 후 세례를 받았다. 이 사람 역시 처음부터 한인촌으로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가르치고 증거하기를 간청했다. 한인촌 거주 한국인들은 본국의 모든 사회적, 정치적 방해를 받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복음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 로스 선교사의 ‘한국인 개종자’ 중
이처럼 ‘예수셩교본’의 한국인 번역자들은 중국 만주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호구지책을 위해서가 아닌 성경을 통해 기독교에 접하고 스스로 그 진리를 확실히 배우기 위해, 혹은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로스 선교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세례를 받고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가 복음의 전도자가 되기를 원했던 열렬한 신앙인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유산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초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