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암흑기를 끝내고 인류 역사의 새 길을 열었던 종교개혁이 497주년을 맞았다. 15~16세기 타락한 중세 가톨릭교회에 맞서 생명의 위협까지도 감수하며 교회의 본 모습을 회복하려 했던 종교개혁가들.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역사가 종교개혁이다. 현재 한국교회 안에 불거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종교개혁기 전후의 모습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당시의 모습을 통해 한국교회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지 않을까?
본지는 종교개혁주일을 앞두고 종교개혁가 중 마틴 루터(1483~1546)와 존 칼뱅(1509~1564),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와(1514~1572)와의 가상대담을 마련했다.
“기도의 연료로 강해진 믿음이 개혁할 용기를 주었다네”
기자 : 책에서 뵙던 분들을 만나 영광입니다. 종교개혁을 외칠 때는 많이 두려우셨을 텐데요. 어떤 용기로 그것이 가능했습니까?
루터 : 이 세상 모든 것은 희망으로부터 나옵니다. 희망은 강한 용기이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의지입니다. 그 희망은 믿음으로부터 나오고요. 또 믿음은 기도라는 지속적인 연료를 필요로 하죠. 입으로만 읊조리지 않고 마음 속 깊이 기도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칼뱅 : 그 땐 참 힘들고 긴장된 시기였어요. 오랜 기간 투쟁이 있기도 했고요. 1533년 친구 니콜라 콥의 파리대학 학장 연설문을 도와줬는데, 그 내용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쫓겨나다시피 프랑스를 떠나야 했고요. 제네바에서는 강력한 교회 규칙을 시행하려고 했지만, 1538년, 또 제네바에서 추방됐습니다. 낙담되는 시기였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이죠. 그런 마음이 용기를 낼 수 있는 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낙스 : 숱한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받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담대하게 증거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운 경외심 때문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모든 것은 전적인 그분의 은혜였습니다. 나를 부르시고 그의 은혜로 임명하사 하나님의 신비를 수종드는 자게 되게 하신 것입니다. 또 내가 받은 이 사명을 그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반드시 정산해야 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자 : 종교개혁가 분들이 겪었던 중세교회는 어땠나요? 지금의 한국교회 환경과 비교해 보신다면요?
루터 : 목회자의 각성에서 출발하는 교회의 공공성 회복과 윤리의식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점은 같다고 하겠네요. 그러나 종교개혁이 일어난 500년 전의 유럽교회와 한국교회의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가톨릭이 지배하던 당시와 달리 한국은 다종교 사회입니다. 타종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겠죠. 또한 당시 저는 봉건 영주들의 도움을 받아 개혁을 진행했습니다만 지금의 한국사회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사회인만큼 개혁의 방법에 있어서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개혁을 부르짖을 용기와 개혁을 통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되겠죠?
낙스 : 로마 가톨릭 교회 통치 하의 스코틀랜드 국민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절대적 권위를 갖는다는 사실을 들을 수 없었어요. 국민들에게 성경의 권위보다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교황의 가르침이 더욱 우위에 있다고 가르쳤으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이러한 행태는 제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핵심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종교개혁을 이룬 개혁교회들이 ‘오직 성경으로’라는 기치에 따른 믿음으로 바른 구원관을 가르치고 있는지는 조금 의심스러워요. 한국교회에도 개혁신앙을 왜곡한 신학관, 교회관을 가지고 목회하는 이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기자 : 종교개혁기에 만인제사장주의가 정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대요. 정말 집사도 사제로 볼 수 있는 건가요?
칼뱅 : 스트라스부르에서 돌아와 두 번째 제네바에서 사역할 때 4종류의 직분제도를 결정했습니다. 공적 말씀 선포와 성례집행, 상담을 주된 임무로 하는 목사, 신학교육 뿐 아니라 교회 관련 모든 학교를 관장하는 박사, 성도들의 삶을 감독하는 장로,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들을 위해 세운 집사가 그것인데요. 어느 직분이 더 귀하다고 생각하세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직분은 소중하고 평등합니다.
루터 : 물론입니다. 그러나 직분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회자의 권위가 지나치게 강조되고, 평신도와 구분 짓는 행태는 만인 제사장의 모습을 상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인제사장주의는 종교개혁의 핵심입니다. 성직자의 권위만을 내세우는 것도, 평신도의 권리만 주장하는 것도 교회를 혼란시키는 행태입니다.
낙스 : 저는 교회의 행정조직과 직분자들의 역할과 기능을 칼뱅 선배가 세운 양식을 주로 따랐습니다. 직분자들은 모두 매년 재선거를 실시해 뽑았습니다. 매주 목요일, 직분자들은 함께 모여 교회 일을 의논하고 치리를 행하는 겁니다. 이는 직분상의 우월이 아닌 역할의 구별이며 하나님은 이를 동등한 위치에서 평가하실 것입니다.
기자 : 종교개혁 때부터 믿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믿음의 실천이 다소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루터 : 기자가 이야기하듯 칭의를 중요하게 강조해 일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제 책임이 일정 부분 있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당시 가톨릭교회는 ‘구원'의 문제를 볼모로 면죄부를 파는 등 잘못된 가르침으로 착취를 거듭해왔습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믿음으로 구원' 받는 문제를 먼저 강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낙스 : 말씀은 말씀에 대한 강력한 ‘순종’도 함께 포함하고 있는 겁니다.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 말씀이 있지요. 신구약 안에는 교회의 교훈을 위해 필요한 것과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는 내용이 충분합니다. 선행은 말씀을 믿는 데서 오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믿음만 있고 선행이 없다는 것은 교회가 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자 : 한국 사회에서는 최근 가톨릭교회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칼뱅 : 저는 12살 때 신부는 아니지만 성직을 받을 정도였으니까 꽤 관계가 깊죠. 하지만 1534년 성직을 포기하고 기성 교회와는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제 신학 저술 때문에 가톨릭교회 대표들과 대립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어떠냐고요? 글쎄요. 가톨릭교회가 과거의 모습과 같다면 거부할 것입니다. 신앙의 순수를 훼손하는 어떤 것과도 타협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미신적 요소들을 강요하거나 면죄부를 파는 것 같은 모습 말이죠. 그런데 지금 가톨릭교회가 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돼야 한다는 말 들어봤을 겁니다. 오히려 지금의 한국교회가 중세 가톨릭교회와 같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낙스 : 저는 16세기 로마 가톨릭교회를 ‘죄의 사람’, ‘적그리스도’라고 일컬었으며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니라 바벨론의 창녀와도 같다고 맹렬히 비판했어요. 또한 당시 로마교회의 미사를 우상숭배라고 지적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시민들에게 가르쳤지요. 교회의 주와 구세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이 높임을 받는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가톨릭이 당시의 가톨릭과 달라졌나요?, 예수가 아닌 다른 것을 숭배한다면 그것은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이 대중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구원을 보증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가톨릭과 개신교는 엄연히 다르며 오늘날에도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기자 : 말씀의 진리를 거스르는 정치의 권력에도 순종해야 할까요?
낙스 : 저는 하나님의 교회의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상대방이 군주일지라도 정권이 개신교를 탄압하는 것에 강력하게 반발했어요. 군주의 신하로서의 도리보다 ‘진리를 말하지 않으면 조국을 배반하는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실한 일꾼으로서 응대한 것이지요. 하나님은 말씀을 대적하는 지도자들을 대항해 분연히 일어설 것을 명령하셨고 군주에게 앙갚음도 허락하셨다고 생각해요. 저는 성경 어디에서도 하나님이 왕들에게 주신 특권들이 하나님의 위엄을 드러내는 권리를 가진 것보다 더 큰 것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어요. 그렇기에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진리를 거스르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대항할 수 있었던 거지요.
기자 : 모두 결혼에 있어 다소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계신데요. 결혼 적령기 청년들에게 경험을 들려 주신다면요?
루터 : 저는 아내 카타리나와 16살의 나이 차이 때문에 결혼을 망설였지만 시민들의 축복 속에 결혼했고 선택은 옳았습니다. 많이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아내를 '나의 주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많이 사랑했습니다. 아내는 지병이 많았던 제게 좋은 간병인이었고, 신학적인 토론을 할 만큼 성서에 해박했습니다. 많은 손님들을 대접하면서도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던 아내에게 정말 고마웠고요. “카타리나가 아닌 다른 여자와는 그가 비록 여왕일지라도 다시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던 제 다짐만 봐도 아내를 향한 제 마음을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훌륭한 결혼만큼 아름답고 매혹적인 인간관계는 없습니다.
칼뱅 : 처음 제네바에서 추방되고 스트라스부르에 정착했을 때 과부였던 ‘이들레트 드 뷔르’와 결혼해 마음으로 낳은 두 자녀까지 얻었어요. 친구들은 적령기를 넘긴 제게 많은 여인들을 소개해 줬지만, 저는 미모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절바르고, 순종적이고, 교만하지 않고, 절약하고 건강한 여성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청년들에게는 너무 구식일까요? 아내와 결혼해서 행복한 부부로 함께했었습니다. 1549년 아내가 먼저 천국에 갔을 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낙스 : 저는 개신교도를 무참히 학살했던 영국의 메리 여왕에 강하게 반발하는 책을 쓰면서 여성 혐오주의자라는 비난을 얻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스코틀랜드 국경 근처 베르웍에서 사역하면서 마조리 보웨스와 사랑에 빠졌고, 1555년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당시 ‘내조의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멋진 아내였죠. 하지만 아내 마조리는 2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 나이 50세에 당시 17살의 마가렛 스튜어트와 재혼했습니다. 마가렛은왕족 출신이어서 여왕은 스코틀랜드에서 저를 쫓아내기 위해 갖은 모략을 펼쳤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제가 여왕의 친척이 된 것은 하나님의 묘한 섭리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기자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루터 : 아시다시피 지금 많은 성도들과 학자들이 한국교회의 새로운 개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대형화와 세속화,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 등 이런 모습들은 종교개혁 당시 개혁의 대상이 됐던 가톨릭교회와 흡사합니다. 저는 ‘오직 성경, 오직 은총, 오직 믿음’이라는 개혁의 핵심 요소를 한국교회가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칼뱅 : 교회는 지구 전체와 모든 시대에 흩어져 있는 성도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하나의 영으로 연결돼 있고요.
그런데 한국교회는 100년이 조금 넘는 역사에도 엄청나게 많은 분열을 했더군요. 분열이 반드시 나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한국교회는 너무 심각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했을 때 옳은 것인지, 서로 욕심 때문에 나뉘는 것은 아닌지 냉정히 성찰해봐야 합니다. 또 지금 신앙이 우리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자 했던 그 때와 같지는 않은지 돌아보세요. 요즘 인터넷도 잘 되고 자료도 많이 있잖아요.
낙스 : 저는 종교개혁을 일으킬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교리에 대해 비판하고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 따를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설교 강단 위에서 일어났어요.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강단에서의 설교가 죽어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시대는 날이 갈수록 타락해져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의 설교는 그만큼 어두운 세대와 시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바른 말씀의 훈계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설교자들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만 철저하고 정확하게 전달했어도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겁니다. 상실한 교회의 생명력과 영적인 힘은 오직 복음을 충실하게 설교함으로써 회복될 수 있을 거예요.
참고 자료
책 : 마르틴 루터(규장), 종교개혁 루터와 칼뱅 프로테스탄트의 탄생(시공사), 개혁자 칼뱅(넥서스크로스), 칼뱅(대한기독교서회)
논문 : 종교개혁과 한국교회 개혁의 과제들(박명수), 한국 교회의 현재, 종교개혁 무렵과 유사하다(임원택), 존 녹스와 앤드류 멜빌의 장로교 사상(김중락), 존 녹스의 교회 목회사역에 있어서의 균형(황봉환), 담대한 설교자로서의 존 녹스(서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