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게 모르게, 모욕감’ 윌리엄 어빈 지음, 홍선영 옮김 / 마디
조지 버나드 쇼가 처칠에게 자신의 연극 공연 첫날 입장권 두 장을 쪽지와 함께 보냈다.
“친구랑 같이 보세요. 혹시나 있다면.”
처칠은 공연 첫날에는 다른 약속이 있으니 둘째 날 입장권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혹시나 있다면. 저녁 파티에서 만난 낸시 애스터(영국 최소의 여성 하원의원)가 처칠에게 말했다.
“윈스턴, 내가 당신과 결혼했다면 아마 당신 커피에 독을 탔을 거예요.”
그러자 처칠이 대답했다.
“낸시, 만일 당신이 내 부인이었다면 난 그 커피를 마셨을 거요.”
웃자고 하는 말이라고 하기엔 가시들이 돋혀 있다. 이 순간, 당신도 알게 모르게 모욕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가족이든, 친구이든, 심지어 애완동물에게까지도.
우리는 왜 서로 모욕을 줄까? 모욕은 왜 그렇게 고통스러울까? 고통을 막거나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남을 모욕하는 습관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저자 윌리엄 어빈은 “모욕을 이해하면 모욕에 대응하는 자신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그는 “모욕을 받고 나면 하루가 엉망진창이 되었던 예전과 달리, 날카로웠던 모욕의 가시는 무뎌지고, 모욕을 받고 분노가 차오르기보다는 모욕을 가한 사람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싹틀 것이다”고 말한다.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 이어진 그리스 로마 철학파인 스토아학파는 일찍이 ‘모욕’에 대해 관심이 깊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모욕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하고 모욕의 심리학에 멋지게 대처하는 방법도 이끌어냈다. 스토아 철학을 공부한 저자 윌리엄 어빈은 스토아 학파의 모욕에 대한 유난한 관심에는 뭔가 이유가 있다고 귀뜸한다.
“철학자의 역할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것이라면 그들이 모욕에 대해, 모욕이 인간만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한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고통을 주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면 우선 모욕에 대해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흔히 말하는 ‘모욕 모음집’이 아니다. ‘모욕의’ 책이 아니라 ‘모욕에 대한’ 책이다. 모욕 뒤에 숨은 심리와 모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쉽지 않은 주제인 만큼 선뜻 손이가지 않을 지도 모르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알게 모르게, 모욕감’은 누구나 공감하며 쉽게 읽히는 책이다. 각종 모욕에 대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유명인들 이야기에는 윈스터 처칠, 조지 버나드쇼,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위트가 담겨 있다.
여배우 일카 체이스의 이야기를 예로 모욕을 위트있게 이겨내는 방법도 알려준다. 험프리 보가트가 그녀의 신간을 참 잘 읽었다며 물었다. “그런데, 그 책 누가 써준 거요?” 그녀는 대필작가를 둔 것이 아니냐는 그 말에 화가 났지만 침착하게 응수했다. “좋아하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누가 대신 읽어준 거죠?”
상대에게 아픔을 주는 말, 이른바 ‘모욕’에 대한 고찰을 함께 곱씹어보게 도와주는 ‘알게 모르게, 모욕감’을 통해 모욕에 잘 대응하는 법, 모욕에 질린 가시를 없애는 법, 더불어 모욕을 막기 위한 사회적 노력을 함께 배워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