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에게 들은 전쟁의 참상. 적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마구잡이로 총구를 겨눴고 또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갔다는 베트남의 선량한 시민들, 또 그들을 약탈했던 많은 군인들의 이야기. 직접 베트남전에 참전하지는 않았지만 동료들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은 그는 자신이 빚을 진 것은 아니었지만 꼭 이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청년 기독교인으로 목회자를 꿈꾸던 청년은 그 후 목사가 돼 13년간 한 교회를 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사 파송을 생각하며 방문했던 베트남. 그곳에서 그는 젊은 시절 스스로 품었던 꿈들을 꺼냈다. 그리고 2009년이 되던 해 김동기 선교사(생명나무교회)는 섬기던 교회를 내려놓고 베트남으로 향했다.
# 베트남으로
베트남 첫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하나님께서는 누군가 보낼 생각을 하지 말고, 네가 직접 그 땅을 밟으라는 메시지를 주셨다. 환갑이 넘은 나이.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선교사로 일어선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뜻을 따라 순종하고 베트남 하노이에 자비량 선교사로 떠나왔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기독교 포교활동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 현지에 와있는 한국 교민들을 대상으로 목회활동을 할 수 있었죠. 사실 이 부분도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지만, 현지인들에게만 포교를 하지 않으면 묵인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떠나온 상황.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김 선교사를 파고들었다.
게다가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발각이라도 되면 즉시 추방되기 때문에 걱정이 큰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게 하노이에 정착한지 6개월. 김 선교사는 교회를 개척했다. 주일에는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주중에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음악교육, 한글교육에 나섰다. 그렇게 만났던 베트남 청년들은 참 따뜻했다.
# 공안의 습격
2011년이 되던 해. 노후대책으로 남겨두었던 자금과 막내 딸에게 도움을 요청해 드디어 교회를 건축했다. 김치공장으로 허가를 받은 건물. 합법적으로 교회를 짓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립식 건물이 지어졌다. 그 때야말로 하나님께서 이제 길을 보여주시는 듯 했다.
“하노이 경남빌딩 근처에 약 300평의 땅을 10년간 임대계약하고 80평 규모의 교회를 지었습니다. 이제 조금씩 자리가 잡혀간다고 생각했죠. 비록 그 때도 숨어서 예배를 드리긴 했지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행복했습니다.”
이제 시작이라며 기대를 가졌던 그의 생각은 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그 상황 속에서 김 선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도밖에 없었다.
# 왜 우세요?
건물이 헐리고 난 후 며칠을 눈물로 기도하며 그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도하고 있는 그에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왜 우느냐고 물었다. 상황을 이야기 했지만 잘 알아듣지 못했던 아주머니는 다음날 한국말을 잘하는 한 베트남 청년을 데리고 와 사정을 물었다. 억울한 사정을 털어놓자 함께 속상해 하던 아주머니. 조용한 곳에 그를 불러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아주머니는 베트남의 높은 관료의 부인이었어요. 게다가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더니 최대한 돕고 싶다며 말하는 서류를 챙겨다 주면 베트남에서 사역할 수 있는 자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교회 또한 정부의 공인을 받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도 했죠. 처음엔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나 싶었는데,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였구나.”
그 아주머니가 이야기 한 서류를 준비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갔다. 2012년 10월 베트남 정부에 제출한 서류는 공안부와 문화관리부 국회를 통과했다. 그리고 2013년 3월 25일 정식으로 베트남 북부총회 목사로 가입, 교회는 베트남 북부 충회소속의 교회가 됐다. 당장 추방당할 걱정을 하며 눈물 흘리던 그가 포교활동을 금지하는 베트남에서 마음껏 사역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 건물을 지어주시오
그렇게 좋은 기회를 얻고, 자격을 얻었다면 만족할 만도 한데, 김 선교사는 베트남 정부에 교회를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이 부숴버린 교회였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베트남에 복음을 전하려는 중심이 확고한 그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셨을까. 지난 4월 하노이 시는 정부의 땅 약 500평을 10년간 임대할 수 있도록 김 선교사를 도왔다. 대지가 마련되자 하노이 시의 한인들은 최초로 정부의 공인을 받았는데 교회를 지어야 하지 않겠냐며 십시일반 힘을 모아 교회를 지었다. 비록 조립식으로 지은 허름한 건물이었지만, 이제 마음껏 베트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장소, 그리고 기회가 생겼다.
베트남에서 외국인이 국가의 공인받은 목사가 된 것은 김 선교사가 두 번째다. 그리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이다. 복음의 불모지 베트남에 이제야 마음껏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김 선교사는 앞으로 한국인과 베트남인이 결혼해 낳은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성경을 가르치는 유치원을 세워 교육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베트남 국적의 어머니들을 위한 강좌도 열고 싶다고 한다.
“베트남 사회와 한인 사회 어느 곳에서도 섞이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이 아이들이 베트남에서 지도자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교회를 짓고 남은 땅에는 신학교도 세워 영적 지도자도 길러낼 계획입니다. 베트남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없던 일이기 때문에 더욱 설레고 가슴 떨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 교회의 후원이 절실합니다.”
지금은 미약하고 어렵지만 꾸준히 기도하고 노력하면 언젠간 하나님의 뜻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 김 선교사. 젊은 시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베트남으로 떠난 그에게 하나님은 기회를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