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그늘에 생명의 빛을, 카이퍼의 개혁주의 미학 (22) - 안용준 목사(목원대 겸임교수)
하나님의 권위에 응답하는 미적 환경 가꾸어야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자. 드넓은 하늘에 곱게 드리워진 물감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신비한지, 계절마다 색다른 모습으로 웃음 짓는 꽃들의 향연, 그 향연에 초대된 온갖 곤충들의 환희에 찬 노래 소리는 얼마나 오묘한지, 미처 알지 못하는 작은 생명들이 움트는 순간엔 경이롭기까지 하다. 또한 짙푸른 빛으로 채운 바다의 위용은 우리의 시야로는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가 아닌가. 사실 수없이 철썩거리는 파도조차도 셀 수 없을 정도니 자연을 온전히 묘사하기엔 어느 언어로도 부족할 듯싶다.
다행히 우리는 이런 엄청난 세상의 창조 사역을 시행하시는 하나님에 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혼돈과 공허로 방황하는 세상에 질서를 세우시고 풍성한 생명을 공급하신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권세 앞에 눌릴 뿐이다. 이제 우리가 세상의 자연법칙에 따라 살아가듯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발견하고 그 뜻대로 살아갈 때 가장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카이퍼에 따르면 18세기의 계몽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모더니즘은 자연인의 자료로 자신의 세계를 세우고 자연의 자료로 인간 자신을 세우려고 할 뿐이다. 결국 성경적 통합체계를 거부하며 종교적 영감의 원천과 단절된 양식은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삶을 위한 충동과 열정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경시하거나 모호하게 이해하고 왜곡할 경우에도 이러한 현상은 동일하게 발생한다.
그렇다면 인간을 둘러싼 적대적 경향들을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체계 안에서 새로운 규범으로 전이 시킬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카이퍼는 창조된 질서 안에서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하나님은 이미 창조세계를 보시고 ‘좋았다’라는 말씀을 이미 여러 번 하셨다. 특히 마지막에는 ‘심히 좋았다’(창 1:31)라는 말씀은 창조가 아름답고 완전하게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세계 안에서 최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아울러 세상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을 향한 부르심의 터전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은 각 사람이 온전하게 서도록 훈련시키는 미적인 학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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