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영성으로 생명을 품다
인간은 진리와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이 채워지지 못한다면 늘 만족할 수 없는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를 얻기 위해 늘 영적 싸움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가 역시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아름다운 삶을 이루어내는 사명을 감당한다. 카이퍼는 “예술은 과거의 왜곡된 환경에서 머뭇거리면 안 된다. 그릇되게 해석되고 감상됐던 부분들을 제거해야 한다.
예술의 바른 성장을 위해 생명의 법칙을 발견해야 한다. 그동안 다양하고 급변하는 예술 안에 드리워진 온갖 부자연스러운 끈을 풀고 자연스러운 진리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극도의 무력감과 한계에 사로잡힌 예술계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힘들고 고단한 예술의 여정에 성경적 아름다움의 원리를 통하여 가슴 뭉클한 감동의 순간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렘브란트라는 예술가의 이름만 들어도 마음의 눈앞에 예술의 보화가 펼쳐진 것 같은 감흥에 젖는다. 그 정도로 렘브란트는 영성의 사람이었다. 그는 노년에 처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작업과 함께 하시며 보호해 주심을 믿었다. 그에게 닥쳐온 예상치 못한 곤경은 거침이 없었다. 개인 부채로 전 재산이 경매에 부처 졌으며 결국 빈민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겨우 아홉 달밖에 안된 아들 티투스를 두고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는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는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이 지속될 때에도 성령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임을 잊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 광야의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길에 자신의 몸을 던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창조적 질서 위에 많은 성경의 이미지는 이런 광야 가운데 탄생했다. 145점의 유화와 70점의 에칭 그리고 575점의 소묘가 성경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그 무렵 대부분의 화가들은 성경 그림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귀족의 생활을 묘사한 화려한 그림과 신화를 주제로 하는 이상화된 조형세계와 영웅적인 내용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을 때였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렘브란트는 화면에다 진정한 인생여정과 진리를 연결시킨 대표적 화가가 되었다. 그의 그림에는 성령님을 통해 순례의 길에 오른 자신의 인생이 각인되기도 했다.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엿보이는 작품도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있다. 혹독했던 인생의 겨울을 지나 꽃을 피우는 봄을 연상시킬 수 있기에 그렇다. 렘브란트의 풍경화가 새롭게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지금도 그의 작품에서는 생명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것은 어디에서 불어왔는지 알 수 없는 은혜의 바람과도 같다.
카이퍼의 언급대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영감 받은 예술은 인간에게 산 소망과 생명을 안겨줄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 실존의 중요한 변화는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방법들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