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락(樂)을 통해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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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락(樂)을 통해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2.09.17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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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 1급을 넘어선 서울대 경제학부 김찬기 군

척수성근위축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지체장애 1급의 장애인이 공부법에 관한 책을 냈다. 중증 장애를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해온 이 청년의 열정도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하지만 그가 쓴 특별한 공부법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찬기 군(20·하늘중앙감리교회)은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두 발로 땅을 디뎌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전동식 휠체어에 의존하지 않고는 움직일 수도 없다. 그런 그가 장애인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초·중학교와 충남 외국어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지난해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 합격했다.

# 장애와 싸운 후 얻은 신앙

김 군이 또래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살이 되던 해였다. 여느 아이들처럼 울어야 할 때 잘 울고, 웃어야 할 때 잘 웃었다. 언어를 습득하는 능력도 정상이었다. 단지 걸음마가 조금 늦었을 뿐이었다.

“걸음마 시기가 계속 늦어졌어요. 보통 아이들이 보행기를 밀면서 다닐 때 나는 서는 것조차 할 수 없었죠. 그때서야 부모님은 제 상태가 심각하다고 느끼셨어요.”

동네 병원을 거쳐 대학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후에야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됐다. 척수성근위축증이라는 생소한 병이었다. 그리고 의사의 청천병력과 같은 말이 이어졌다고 한다. “의학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이 아이는 열다섯 살을 넘기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김 군의 부모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기(氣)치료, 마사지 등 물리적인 처치부터 굿판, 침술 등 미신과 온갖 민간요법까지 해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절에서 한 스님은 김 군의 부모에게 아이를 절에 맡기면 건강해질 것이라고 권했다. 하지만 아이와 떨어져 살 수 없었던 그들은 흔들리지 않으셨다.

김 군은 “세상에는 냉정한 부모도 많다. 먼 친척 중에 나와 비슷한 병을 갖고 태어난 아니가 있는데, 그 부모는 아이와 인연을 끊고 살고 있다”며 “만약 부모님이 나를 혼자 절에 두셨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됐을지. 부모님께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묵묵히 자신을 수발해주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덧붙였다.

5년여의 치료를 위한 노력 끝에 김 군의 가족들은 기독교 신자가 됐다. 김 군은 “종교를 가진 이후부터 힘들고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었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믿고 의지할 대상이 생겼다”면서 “적어도 ‘치료하면 낫는다’는 말에 현혹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 장애는 주어진 조건일 뿐
“많은 사람에게 운명과도 같은 각기 다른 조건이 주어진다. 국가, 민족, 가족, 태어난 곳, 자란 곳 등. 이런 조근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장애가 주어졌을 뿐이다. 왜 하필 장애냐고 불평할 수는 있겠지만, 달라질 것은 없다.”

김찬기 군은 장애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불공평한 조건이라도 수용하고 받아들이면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달라진다”며 “장애라는 조건은 어떤 방법으로든 극복할 수 있고 나에게 장애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진 장애를 설명하면 척수 안에 흐르는 운동신경의 신호 흐름이 약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희귀병이다. 그는 200g의 펜을 드는 것도 버겁다. 남의 도움 없이는 가벼운 숟가락조차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련회나 1박2일 졸업여행도 그는 갈 수가 없었다.

반면에 그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 김 군은 “언제든 맘껏 책을 읽을 수 있고,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누구나 쉽게 낭비할 수 있는 시간에 그는 집중력을 가지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 공부의 신을 이긴 공부의 락(樂)
장애를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은 김찬기 군이 공부에 매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의외다. 공부를 즐겼다는 것이다. 김 군은 “공부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면서 ‘해야 하는 것’,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공부를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세상을 알아가는 방법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커피잔을 가리켰다.

“커피잔에 왜 물이 묻을까. 액체가 왜 생기는 것일까. 공기 중 수분입자들이 차가운 표면을 만나면 기체에서 액체로 변하는 것. 이런 식을 세상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장애로 인해 세상을 나가기 힘들 때 그는 책을 통해서 세상과 만났고 책을 들고 세상을 찾았던 것이다. 공부 또한 세상과 만나는 좋은 방법이었다.

사실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면서도 왜 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는 공부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공부해야할 이유도 분명히 할고 있었다. 그는 최근 ‘공부의 락(樂)’이라는 제목의 공부법 책을 썼다. 누구나 공부를 하지만, 그것을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책을 통해 공부 철학뿐만 아니라 영역별 공부법에 대해 특별한 노하우를 공개했다. 필기를 할 수 없는 그의 노트 정리 비법도 독특하다.

“저는 평생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제가 누군가에게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그가 힘들게 공부법 책을 쓴 이유도 이 때문이다. 누군가가 자신이 공부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는 “즐기는 공부를 할 때 ‘공부의 신’도 ‘공부의 달인’도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 “단순히 성적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공부의 락에 대해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싶다”면서 “취업과 스펙만을 위해 공부하는 이 시대 청춘에게도 자신의 가치에 대해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경제학자
“경제발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요.”

김찬기 군은 서울대학교를 진학하면서 경제학부를 선택했다. 경제 발전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경제학자가 돼서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경제정책을 내놓고 싶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수술을 받기 위해 6개월 간 천정만 쳐다보고 누워있던 때가 있었다.

“기도를 하면서 내일에 대한 희망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침에 기도를 하고 수술실에 들어갔어요. 하나님께서 수술을 무사히 마치게 해주셨죠.”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고, 누구라도 이 같은 일을 겪었다면 자신의 삶을 비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 군은 이 시기를 겪으면서 신앙도 함께 성장했다. 

“매일 밤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초반에는 내일 하루를 잘 살자고 기도했지만, 이제는 남을 도와야겠다는 목표와 확신이 생겼습니다.”

장애라는 주어진 조건을 딛고 인생의 목표를 발견한 김찬기 군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과정은 나를 흥분시키고 설레게 한다. 아직 난 꿈이 고프다”면서 “지금까지는 나만을 위해 공부했다면 이제는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공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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