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장로교는 총회 설립 100주년을 맞았다. 지난 1912년 한국에서 장로교 총회가 처음 조직된 이후 분열과 성장을 동시에 경험했다. 한국의 장로교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다양하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한국 사회와 함께 호흡했다. 또 한국의 역사적 좌표마다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공유하며 공과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한국 장로교는 다양한 분파로 심각하게 분열돼 있지만, 한국 교회 성도의 70% 이상이 장로교인일 만큼 크게 성장했다. 이 때문에 한국 교회가 곧 장로교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기독교의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다. 최근 한국 교회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연합사업과 관련한 마찰이 대부분 주요 장로교단 사이의 대립 구도라는 점도 이 같은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현재 한국 교회는 장로교 총회 설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학술 세미나를 통해 지난 역사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 장로교의 유입과 역사적 기여, 분열과 성장, 개혁과 갱신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지난 100년에 대한 고찰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본지는 한국 장로교 총회 설립 100주년을 맞아,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를 살펴보고 개혁과 갱신을 위한 의제들을 살펴볼 예정이다. <편집자 주>
‘헌법’ 왜곡하거나 오용하지 않도록 교단 차원의 관리감독 및 제도적 장치 필요
한국 장로교회 교단 수를 정확하게 집계할 수 없지만 약 200여 개 이상 된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로교단이 추구하는 신학이나 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헌법이나 치리하는 방법에 있어 교단마다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장로교회는 신학이나 교리보다 정치와 체제에 입각한 교회로 알려져 있다. 장로교회는 개교회 정치보다는 노회나 총회를 통한 교단정치 형태를 추구한다. 그렇다고 장로가 실제적으로 교회의 중심이 되거나 교황이나 감독과 같은 위치에서 정치하는 것은 아니다. 장로회(Presbytery) 체제의 교회정치일 뿐이다.
# 당회ㆍ노회ㆍ총회 정치
장로교회 정치구조는 크게 당회, 노회, 총회로 구분된다. ‘당회’는 개교회 치리를 위한 기본적인 통치 구조로써 개교회 목사와 시무장로, 곧 당회장과 당회원으로 구성된다. 당회장은 상회에서 파송되거나 위임되는 목사다. 보통 세례교인 30명 이상이고 장로가 2명 이상일 때 당회를 구성할 수 있다. 당회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격려하며 학습과 세례, 성찬식을 비롯한 예배를 주관한다. 또한 노회 파송 총대를 선정하고 교회 내 문제를 야기한 성도들을 대상으로 권징을 시행할 수 있다.
‘노회’는 개교회와 총회의 중간 역할을 한다.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는 노회는 개교회 지도 및 감독, 각 교회 청원 및 고소 등의 안건을 처리한다. 장로고시, 장로선거 승인, 임직허락, 이명권징과 개교회 분리, 설립 폐함 등을 관장한다.
‘총회’는 장로교회의 최고 의결기관이다. 노회로부터 파송된 총대로 구성된다. 노회로부터 상정된 다양한 안건을 처리한다. 헌법해석이나 노회설립 및 분리, 교회분쟁 등을 조정한다. 교단의 각종 사업을 비롯해 교단 산하 단체와 기관들을 총괄하고, 타 교단 및 연합단체들과의 관계정립 및 교단 입장을 대변한다.
# 장로교 정치의 문제점
사실 한국의 장로교회 정치제도는 1백여 년이 넘게 ‘치리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 제도를 시행해 온 미국 장로교회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장로교회는 갈라졌던 미국 장로교((PCUSA)와 남장로회(PCUS)가 지난 1986년에 합해지면서 그동안 사용해왔던 치리장로(Ruling Elder)와 가르치는 장로(Teaching Elder) 제도에서 탈피했다.
그러나 한국의 장로교회는 여전히 ‘다스리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라는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장로교회 헌법은 △항존직은 장로, 집사, 권사며(행 20:17, 28; 딤전 3:1~23), 그 시무는 70세까지로 한다 △장로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설교와 치리를 겸한 자를 목사라 하고, 치리만 하는 자를 장로라 한다 등으로 명시돼 있다.
이와 같은 정치제도가 많은 문제점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손봉호 박사(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 장로교회 정치에서 발생하는 대다수의 문제는 목사와 장로로 구분하는 잘못된 헌법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손 박사는 “제사장직, 사도직, 목사직은 절대로 장로직에서 파생되거나 기인된 직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국 장로교회는 장로가 마치 목사의 아버지가 되거나 맏형이나 다름없는 교회론에 입각해 있다”며 장로교회가 원래 갖고 있었던 교회정치의 기본원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즉, 장로교회는 개혁신학에 입각한 교회로써 교황 정치, 감독 정치, 회중교회 정치, 정당 정치 등을 비롯해 고위성직제나 성직자 정치를 반대하는 교회라는 기본적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장로교회 역사 속에서 교권주의자들은 교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헌법을 활용해왔다는 비판이 많다. 따라서 헌법을 교묘하게 이용해 교권을 추구하는 이들을 가리켜 ‘정치목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와 함께 장로교회 정치제도는 성직의 계급화와 직분간의 갈등, 개교회주의 등 다양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 성직과 직분의 계급화
장로교회는 성직자 평등주의와 모든 직분의 평등을 주장하는 장로회주의를 추구하지만 한국 장로교회는 유교적 전통의 영향을 받아 관료주의화 됐고, 왕도사상의 영향을 받아 한 명의 성직자를 중심으로 한 계급적 구조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보통 당회장인 목사를 중심으로 여러 명의 부목사가 있고, 장로들이 있다. 또한 안수집사, 권사, 서리집사, 일반성도들로 교회가 구성된다. 장로교회 헌법에 따르면 모든 직분은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에 따르는 것이지 직분의 계급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직분의 계급화는 이미 관행처럼 돼버렸다.
일반 성도가 장로가 되려면 서리집사를 거쳐, 안수집사, 권사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직분은 은사에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한국 장로교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장로는 계급이 아닌 은사이며 섬김의 직분이지만 장로들이 교회를 치리하게 되면서 계급화됐다.
장로직을 평생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장로교회 정치제도에 있어 수석 장로제는 없다. 하지만 수석이나 차석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교회들도 있다. 고위성직제나 계급제의 교회를 반대하며 가장 민주적이고 평등한 이상적인 교회를 자처하지만 서열이나 선임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 목사와 장로의 갈등구조
목사와 목사와의 관계도 문제다. 헌법은 목사 후보생을 규정하고, 목사가 되기 위해 교회의 청빙을 받거나 노회나 총회로부터 기관사역을 위탁받는다. 모든 목사가 당회장이 되는 것도 아니다. 목사와 목사 사이에 계급이 존재하면서 장로교회는 거대한 권력투쟁의 싸움터로 변질됐다는 비판과 지적도 끊임없이 받고 있다.
특히 목사들의 계급구조는 ‘부목사의 목회윤리’라는 이상한 관습도 만들어냈다. 각 노회에서 목사안수를 시행할 때 부목사의 윤리강령이 강조된다. 한국 장로교회에서 부목사는 담임목사의 조력자일 뿐 같은 위치에서 목회를 할 수 없다.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부목사는 언제나 담임목사의 입장을 대변하고, 그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
장로회주의는 성직자간 평등을 강조하지만 목회현장에서의 이상과 현실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담임목사 대부분 부목사를 동역자로 인식하기보다 자신의 목회관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언제나 내쫓을 수 있는 종이나 비서로 생각한다. 그렇다보니 장로와 교회 성도들도 부목사를 목회자로 인정하기보다 담임목사의 수행비서쯤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부 담임목사들은 부목사를 자신의 위치를 탐할 수 있는 요인으로 생각하고, 부목사들의 일부 교회 사역을 제한하기도 한다. 부목사들 사이에서 담임목사보다 설교를 잘해서는 안되며,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이 된지 이미 오래다.
중형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 부목사는 “최근 담임목사의 비리를 우연찮게 알게 됐지만 모른 척 할 수밖에 없다”며 “장로들과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것도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교회 성도를 언제, 어디서 만나 어떤 대화를 했는지 일일이 다 보고할 정도”라고 목회사역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목사와 장로 사이에서도 많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 장로교회는 대다수 당회장 1인의 독단에 의한 교회정치가 이루어지면서 장로교회로서의 면모를 상실하고 있다. 목회현장에서 목사와 장로가 서로를 억압하려고 하면서 많은 교회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차원을 넘어 직분간의 양극화가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목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직분이지만 장로는 사람이 세운 직분이라며 목사의 권위만을 강조하며 장로의 권위를 묵살하고 있는 목사들도 많다. 하지만 성경은 장로도 목사와 같이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를 치리함에 있어서 목사와 장로는 상호 협력적인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
장로 또한 마찬가지다. 장로도 교회 내 다양한 정치적 절차를 통해 스스로 교회의 주인임을 주장한다. 담임목사는 노회에 소속된 사역자일 뿐 교회의 실질적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교회 안에서의 목사와 장로들의 교권다툼은 장로교회 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장로교 정치, 어떻게 해야 할까
장로교회 헌법은 만인제사장 원리에 입각해 모든 직분은 평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직분은 섬기는 직분이지 군림의 직분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한국 장로교회 모습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할 수 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는 한국 장로교회 정치는 미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필수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로교회 원리인 대의정치의 근본적 의미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장로교회는 정치의 민주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가야 한다”며 “민주화란 현대의 시대정신이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있듯이 교회도 민주화의 정신으로 교회 정치의 문을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의 헌법과 교회 정치의 갱신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한국 교회는 일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갖고 있어 헌법이나 교회정치 자체를 개정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급속한 사회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신속하게 교회정치와 목회 패러다임도 변혁해야 한다. 교회정치 개혁이 사회변혁의 원동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다가오는 미래 교회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목회자보다 평신도의 활동이 더 극대화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한국 장로교회는 성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목사와 장로에게 의존된 형태가 아닌 평신도와 함께하는 형태로 변화해야 목회적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
‘장로 임기제’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장로의 임기는 항존직(정년 70세)로 정해져 있다. 한번 장로로 임직하면 불미스러운 일을 범하지 않는 한 아무리 자격이 미달된 행위를 한다 하더라도 그 직이 사임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종신제는 장로교회의 전통에 어긋난다. 요한 칼빈은 제네바에서 처음으로 평신도들의 대표인 장로와 성직자의 대표인 목사가 함께 교리위원회(당회)를 만들어 교회의 일을 대의제도로, 민주적으로 처리하게 했다. 따라서 일정한 기한을 정해서 다시 신임을 얻는 것이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장로 임기제가 없는 교단은 한국과 스코틀랜드 교회뿐이다. 스코틀랜드 교회도 최근 장로 임기제 도입을 시도하려는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한국 장로교회도 대부분 헌법이 임기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개교회에서 서로 동의한다면 이와 관련된 규정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 현재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등의 임기제를 도입 시행하고 있는 장로교회들은 교회가 과거보다 훨씬 더 투명하고 건강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 운영 및 행정에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독단적인 장로교회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침례교회와 같은 회중교회들이 지니고 있는 장점들을 도입해야 한다. 장로교회 정치제도가 유교적이고 권위적이라는 이유로 평신도가 교회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폭은 좁다. 그렇다고 장로교회 원리를 무시한 채 당회에 평신도를 참여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평신도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립할 수 있는 공청회와 같은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한국 장로교회 정치제도가 개혁신학에 근거한 가장 성경적이고 이상적인 정치라고 주장하려면 그에 맞는 실제적인 행동과 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개혁교회의 모토처럼 헌법의 개별 규정들을 재해석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제도개선 및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헌법을 왜곡하거나 오용하지 못하도록 교단 차원의 철저한 관리감독과 목회현장에서 섬김과 사랑, 봉사의 마음으로 장로교 정신에 맞는 민주적인 교회정치를 실현시켜 나가야 한다.
■ 한국 장로교 총회 설립 100주년 - 장로교회를 돌아본다 ③ 장로교 정치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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