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교육적 기능
루터는 언제나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끊임없이 예술적 가능성을 제안하려고 애썼다. 당시 성경의 계시를 담아내는 도구로서 이미지의 활용이 과연 적절한 것이며 예술이 그리스도인을 향한 소통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인지의 문제는 중요한 이슈였다.
그래서 루터는 예술의 교육적 기능을 강조한다. 루터에게 있어서 예술이 소통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문제는 다른 한 가지 기능, 즉 예술의 교육적 기능의 가능성을 불러 일으켰다. 실제로 1528-29년 경 발표된 글들에서는 미술의 교육적 특성에 대해 강조하였다. 루터는 ‘교리문답서’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이 있습니다. 이 지식을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 불릴 수 없으며, 성찬에도 참여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수공업자가 그의 일에 능숙치 못하다면 사람들이 그를 그 일에 부적합한 사람으로 여겨, 내어 쫓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교육을 ‘인간적인 책임’(menschliche Verantwortung)으로 정의한 루터는 타당한 교육원리란 꾸준한 반복에 의해서 수행된다고 보았다. 그는 특별히 시각예술이 성경의 메시지를 풍성히 쌓아가는 사람의 기억력을 높여주는 훌륭한 수단으로 여겼다. 이리하여 말씀을 통한 소통의 중요성이 교회 성도에게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 일에 루터의 절친한 동역자인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의 활약이 돋보였다. 루터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로 널리 알려진 그는 ‘율법과 은총’이라는 주제를 창안하였을 뿐 아니라 아담과 이브, 부활, 최후의 심판 등 친숙한 주제를 표현하였다.
루터는 여기서 종교개혁 당시의 높은 문맹률을 생각했을 것이다. 한 마을에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목사와 사찰에 불과했다는 것은 이미 당시의 문헌들을 통해서 넓게 확인된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당시의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오늘날과 같이 당연시 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개혁자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읽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루터는 칼빈, 멜랑히톤과 같이 교육에 많은 관심과 열정을 가졌으며, 이때 교육의 목표로 지향하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시각예술의 가치를 교훈적인 장치로서 이해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시각예술에 관한 서방교회에 의해 주어진 가장 중요하고 특징적인 이론은 그것의 교육적 인식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