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룸과 므나헴의 통치
므나헴의 통치기간 동안 있었던 가장 어려웠던 일은 아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셋 3세가 이스라엘을 침략한 것이었다.
열왕기하 15:13~16은 이스라엘 왕 살룸의 통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13절에 의하면 야베스의 아들인 살룸은 왕이 되어 한 달간 통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살룸은 스가랴를 죽이고 반란으로 왕이 되었지만 그 영화를 오래 누리지 못하였다. 그는 예후 왕조를 끝냈는데 그의 통치는 한 달밖에 지속되지 못하였다.
14절에 의하면 살룸 역시 가디의 아들 므나헴에 의하여 살해당하고 왕좌를 그에게 넘겨주었다. 가디는 디르사를 근거지로 삼았던 사람으로 추정된다.
16절에 의하면 므나헴이 쳐들어 오자 성문을 열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였으나 견디지 못하였다. 므나헴의 잔인함은 아이 밴 부녀의 배를 가를 정도였다. 열왕기하 15:17~22절은 살룸을 죽이고 왕이 된 므나헴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므나헴은 사마리아에서 10년간 왕으로 통치하였다.
17절에 의하면 므나헴은 유다왕 아사랴(웃시야) 통치 39년에 왕으로 즉위하였다. 열왕기하 15:13에서 유다 왕의 이름을 아사랴로 기록하고 있으나 17절에서는 웃시야로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같은 기록에서 왕의 이름을 다르게 기록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만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 18절에 그의 행적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일반적인 이스라엘 왕에 대한 평가를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19절은 므나헴의 통치기간 동안 있었던 가장 어려웠던 일인 아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셋 3세(불 왕)가 이스라엘을 침략한 것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므나헴이 은 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었다. 디글랏빌레셀의 비문에는 그가 시리아-팔레스틴 지역에서 조공을 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는 데 아람의 왕 르신이 이스라엘의 왕 므나헴과 함께 디글랏빌레셀에게 조공을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20절에서는 조공을 마련하기 위하여 사마리아의 큰 부자들에게 50세겔씩 내게해서 그것으로 조공을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므나헴 역시 그의 행적과 그가 행한 일들은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어 있다. 므나헴이 죽은 후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되었다. 열왕기하 15:23~26에서는 브가히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브가히야는 이스라엘 왕이 되어 2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에 대해서도 24절에 의하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25절에 의하면 브가히야는 르말랴의 베가의 반역에 의하여 왕권을 잃게 되었다. 베가는 사마리아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 그리고 아리에를 죽였다. 특히 길르앗 사람 오십명이 이 반란에 참여하였다. 베가의 반란이 길르앗 사람들의 조직적인 반란에 의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아직도 이스라엘 왕국에 지역적인 갈등이 잔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열왕기하 15:27~31에서 베가는 사마리아의 왕이 되어 20년간 통치하였다. 베가 시대의 가장 큰 일은 디글랏빌레셋 3세의 침략이며, 그가 이스라엘을 침략한 것은 디글랏빌레셋 3세의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베가의 통치 때 디글랏빌레셀 3세가 다시 쳐들어와 이욘, 아벨 벳 마아가, 야노아, 게데스, 하솔, 길르앗, 갈릴리, 납달리 등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으로 아시리아로 포로로 잡혀간 사건이다.
특히 기록에 의하면 “오므리 왕조의 16 지역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도시로부터 X명의 포로를 잡았고, ...도시로부터 625명을 잡았다. 히나투나에서 X명의 포로를, 쿠?에서 650명의 포로를 잡았다. 야트비트에서 X명의 포로를 그리고 Sa...도시에서 656명을 포로로 잡았다.....마루마와 마룸도시에서...”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사마리아에서 포로로 잡아간 것에 대한 기록이다.
30절에 의하면 웃시야의 아들 요담 제이십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시대의 북 이스라엘의 왕들은 모두 아시리아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위기의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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