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의 장소 및 절기 개혁 단행
제의 장소를 새롭게 선택한 후 이곳에서 제의를 행할 제사장을 선출하는 일은 여로보암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했다. 일반적으로 왕국의 제사장은 왕조 이데올로기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전통에 의하면 대부분의 제사장들은 다윗 왕조를 위하여 일하고, 다윗 왕조와 연계된 레위 계열의 제사장은 결코 여로보암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여로보암이 일반 백성 가운데서 제사장을 선출한 것은 매우 획기적인 것처럼 보이나, 이것은 새로운 왕조를 시작하는 왕으로서 자신의 정통성과 신학적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세 번째 개혁은 32-33절의 기록으로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여덟째 달 십오일을 절기로 정하여 지킨 것이다. 여로보암이 팔월에 지킨 절기는 초막절이다. 규정에 의하면 초막절은 일곱 번째 달에 지켜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초막절은 여름과실을 수확하고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는 절기이다.
따라서 이 절기는 농사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그런데 왜 이 농사절기를 한 달 늦게 지키게 되었는가? 이를 설명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다. 첫째는 정치, 종교, 이념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설명이다. 이들은 북 왕국의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순례를 하기 때문에 여로보암이 한 달 늦게 절기를 지킴으로써 이들이 예루살렘에서 절기를 지키지 못하게 하고 그 대신 벧엘에서 절기를 지키게 하기 위하여 한 달 늦게 절기를 정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예루살렘에서 절기를 지킨 북 왕국 사람들이 다시 벧엘에서 절기를 지켰겠는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며, 여로보암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한 달을 먼저 절기를 지키는 것이 더 타당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둘째는 월력 체제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설명하려는 견해이다.
여로보암이 다윗 솔로몬 시대에 사용하던 절기를 바꾸는 개혁을 단행했다는 변화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원래 이스라엘은 50일 단위의 농사력을 사용하였는데 솔로몬 때에 주변 국가의 영향을 받아 태양력을 사용하는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것을 여로보암이 다시 원래의 농사력으로 돌려놓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문제점은 고대 근동에서 태양력을 언제부터 사용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두로 지역에서 솔로몬 당시에 태양력을 사용하였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두로 왕 히람을 통하여 태양력을 도입했다는 증거도 찾기도 어렵다.
셋째는 추수 시기의 차이에서 절기의 차이가 생겼다는 주장이다. 에브라임 지역의 추수 시기가 유다의 쉐펠라 지역보다 한 달 늦기 때문에 생긴 차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예로 사사기 21:19에서 실로와 미스바의 추수 절기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예로 든다. 그러나 통일 왕국이 형성 된 다음부터 통일된 절기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수 시기의 차이에 의한 절기의 조정 견해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은 반대한다. 왜냐하면 남쪽 유다 지역의 추수 시기와 북쪽 이스르엘 평야 지역의 추수 시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넷째는 솔로몬의 성전이 여덟째 달에 완성되었기 때문에(왕상 6:38) 성전을 완성한 제의가 아마도 가을 절기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어떠한 대답도 여로보암의 절기를 늦춘 것에 대하여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종교적인 절기를 바꾸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종교와 관련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종교적 절기에 맞추어 삶을 사는 모든 백성들의 반발을 살 위험이 있기 때문에 종교적 절기의 준수일을 수정하는 것은 자신의 지지 기반을 흔드는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자연의 이치인 농사절기는 정치 제의적인 목적으로 그 때를 늦추거나 빨리 지킬 수 없으나, 농사절기를 늦게 지킬 수 있는 합법적인 것은 윤달이다. 고대 근동에서 윤달은 대체로 여섯 번째 달이나 열두 번째 달에 지켜진다. 만약 여로보암이 윤달에 의하여 초막절을 한 달 늦게 지켰다면 이스라엘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던 신명기 사가의 관점에서는 여로보암이 마치 새로운 절기를 만들어 지킨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왕국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전통에서 벗어난 일을 행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김경진 교수<백석대 신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