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93) 이스라엘과 유다의 전쟁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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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서(93) 이스라엘과 유다의 전쟁에 대한 기록
  • 승인 2009.03.0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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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과 다윗 진영의 힘 겨루기




사무엘하 2:12-3:1절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전쟁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 아브넬을 추격하다 아브넬의 창 끝에 찔려 죽게 되자 요압은 아브넬을 쫓는 것을 중지한다. 이 추격에서 요압은 아사헬만을 잃었지만 사울에게 속한 자 360명을 쳐 죽이는 전과를 거두게 되었다.


12-13절에 의하면 사울의 진영과 다윗의 진영의 군인들이 기브온에 있는 못에서 서로 진을 치고 전쟁 준비를 하였다.

14-16절에 의하면 아브넬은 요압에게 서로 군인들끼리 힘을 겨루자고 요청한다. 이에 각 진영에서 12명씩 선발되어 24명의 군인들이 각 진영을 대표하여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24명의 군인 모두가 죽었기 때문에 판가름이 나지 않았다.




▲ 사무엘하 2:16절의 기록처럼 로마 병사 두 사람이 서로 머리를 잡고 칼로 서로를 찌르려고 하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14절의 ‘청년’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아르(נצר)는 청년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군인으로 번역하는 것이 본문의 내용상 적절하다. 나아르란 명사는 청년, 소년 그리고 군인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각 진영에서 대표가 나와 싸움을 겨루는 것은 매우 특이한 전쟁의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을 채택하는 것은 전체 군인이 싸우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러한 예는 사무엘상 17:4절 이하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6절의 헬갓(חלקת) 핫수림(הצדיס)의 의미는 “칼의 밭”(the field of the flints) 혹은 “날카로운 바위의 밭”(the field of the flints)이다. 17절에 기록된 전쟁의 결과 요압의 병사들이 아브넬의 병사들을 무찔렀다. 즉, 24명의 대표끼리 싸움이 무승부로 끝나자 나머지 병사들이 싸움을 벌여 아브넬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패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대표들의 힘겨루기에서 승리한 요압의 진영에서 요압의 동생인 아사헬이 아브넬을 추격한다. 18절의 기록에 의하면 아세헬은 매우 잘 달렸던 사람이다. 따라서 “아사헬의 발은 들노루 같이 빠르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22절에서 아브넬은 자신이 아사헬을 죽이게 될 경우 요압에 의한 피의 복수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함이 역력하다. 따라서 아브넬은 아사헬에게 추격을 그치고, 다른 군사 한 명을 잡고 그의 군복을 벗기라고 권면한다. 그러나 아사헬은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에 아브넬은 창의 뒤 끝으로 아사헬을 찔러 죽인다.

23절의 “창 뒤 끝으로 그의 배를 찌르니 창이 그의 등을 꿰뚫고 나간지라”는 표현을 이해하기 위하여 고대 이스라엘의 창은 창의 촉 이외에도 창의 뒤끝도 뾰족하게 만들어 추격하는 사람을 공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아브넬을 추격하던 요압의 군사들은 아사헬이 죽은 것을 보고 추격을 멈추었다.

24-28절까지에서 아브넬은 요압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을 추격하는 것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다. 특히 아브넬은 더 이상 참혹은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하여 자신을 추격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어 신호를 함으로써 아브넬을 추격하는 것이 멈추었다(28절).

사무엘하 2:29-32절은 전쟁의 결과 및 뒤처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29절에 의하면 아브넬과 그의 부하들은 밤새도록 도망하여 요단을 건너 비드론 온 땅을 지나 마하나임으로 돌아왔다. 30절에서는 요압도 아브넬을 추격하는 것을 멈추고 군사를 정비하니 아사헬을 포함하여 20명의 병사의 손실이 있었다. 그러나 31절에 의하면 사울의 베냐민과 아브넬에게 속한 병사는 360명이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럼 아브넬 쪽의 사상자의 수가 더 많은 것은 다윗의 군대가 우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브넬에 의하여 살해된 아사헬은 베들레헴에 장사되었고, 요압과 그의 병사들은 장례 후 걸어서 헤브론으로 돌아갔다. 29절과 32절에 의하면 아브넬의 군대와 요압의 군대 모두 밤새도록 행군하여 서로 물러선 것은 아마도 뜻없이 피를 흘린 것을 슬퍼하는 표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27절).

사무엘하 3:1절에서는 사울 왕조와 다윗 왕조 사이에 전쟁이 오래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며, 다윗은 점점 강성해지지만 사울의 가문이 점점 쇠해갔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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