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목회자들의 기도 말 가운데 하나님의 ‘신적 역사’(스 6:22, 살전 2:13)를 구할 때 「하나님 노릇」 또는 「아버지 노릇」을 해달라고 기원하는 말투를 들을 수 있는데 쓸 수 없는 말이다. 우리의 어문체계에서 ‘노릇’이라는 말은 “사람의 직업이나 직책에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나 구실 또는 그 일을 속(俗)되게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예컨대 부모노릇, 주인노릇, 자식노릇 등의 말을 하나님의 신적 직무나 역사를 운위(云謂)할 때 비속하게 표현하는 것은 심성적 동기에 고의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말 자체는 ‘지존하신 여호와 하나님’(시 47:2, 사 33:5)께 불경스러운 비종교적 표현이다. 물론 무한한 사랑의 속성으로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당연한 신적 본분으로 거룩한 작용을 필연적으로 해주심을 꾸밈없이 간구하는 소박한 표현일 수는 있다. 그러나 ‘노릇’이라는 말은 비례(非禮)한 말투임에는 틀림없다.
이 말을 삼가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하나님의 사역인 신적 작정, 예정, 창조(영적세계, 물질세계), 섭리(엡 4:16, 히 1:3), 이적(출 3:20) 등의 본질적인 역사를 통한 전지전능자의 신성하신 초월적 행위를 속된 의미를 담은 ‘노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노릇이라는 말이 윤리적인 당위를 비수사(非修辭)적으로 소박하게 우리 언어의 고유성에 비중을 둔 표현이라 하더라도 신적 차원의 본성적인 표현으로 종교적인 신위(神位)에 맞는 격을 갖추어야 할 기도 말에서 범속(凡俗)한 범주에 든 말을 주저 없이 하나님 되심에 붙여 쓰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격률에 벗어나는 것이다. 셋째, 자존(自存)하신(출 3:14) 하나님은 구속과 섭리에서 언제나 솔선선행(先行)하여(요 15:16, 요일 4:19) 운행하시고 인간의 반응을 능동적으로 인도하시며 기쁘신 뜻대로 스스로 결정하시는 주권적인 하나님이신데 마치 인간을 향한 신적 본분을 강요하여 그의 책임을 되 일깨우는 듯한 어감과 인상을 주는 “아버지 노릇”이라는 말은 천부성을 향한 자녀된 인간의 신분에서 부적격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넷째, 이 ‘노릇’이라는 말은 도덕사회 범주에서 윗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주문될 수 있는 말이거나 어떤 일을 하게 된 당사자가 스스로의 행위의 미흡함을 자성할 때나 또는 제삼자의 역할을 객관적으로 적시(摘示)하여 표현할 때 쓰는 어군(語群)에 속한 말인데 이를 하나님께 붙여 쓰는 것은 경외심을 훼손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역의 최고봉은 물론 인간이다. 그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의 대상이고 경륜과 섭리의 대상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행위는 언제나 정당하고 신적 자율로 인간을 만나시고 문제를 해결하시므로 사람으로부터 강요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 노릇’ ‘아버지 노릇’ 등의 강요된 듯한 비속한 표현은 쓸 수 없는 말이다. 이 말이 극히 일부 목회자들이 사용하는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