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복’과 ‘축복’이라는 말을 구분 없이 잘못 쓰는 일에 대하여 이미 언급한 바 있으나 그 오․남용(誤濫用)의 정도가 심하여 또 다른 관점에서 재론코자 한다. 목회자의 설교와 기도, 교인들의 대화나 기도에서 ‘복’과 ‘축복’의 주체와 적용대상을 성경대로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 말을 성경대로 구분하여 보면 <복>은 하나님 편에서 사람에게 주시는 ‘복’ 그 자체로서 구약에서는 “베라카”(ה)나 “아쉬레”(יאַ;Blessing)(창12:3, 시1:1등)로 표현되고 있고 신약에서는 “마카리오스”(μακαριος)(시2:12, 잠8:34, 마13:16등)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축복>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제3자에게 복을 주시도록 비는 기원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서 구약에서는 “바라크"(창14:19, 잠27:14)로, 신약에서는 “유로기아;유로게오"(롬12:14, 고전10:16등)로 각각 표현하고 있어 어원적으로나 쓰인 사례에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가 성경의 기준과 관계없이 잘못 사용학고 있는 실태는 거의 공해(公害)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 ‘복’과 ‘축복’의 용어 특히 ‘축복’이라는 용어를 성경대로 바로 쓰지 않으면 몇 가지 영적 문제점이 있게 되는데 첫째, 신앙과 삶의 표준이 되는 성경의 계시적 권위를 훼손하여 하나님께 불경(不敬)의 결과가 되고 둘째, 복의 근원자로 복을 주시는 유일신 하나님이 또 다른 절대자에게 복을 비는 격의 복의 기원자(祈願者)자로 설정하는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며 셋째, 복을 주실 주체자를 기복자로 규정하는 것은 만유(萬有)의 주가 되신 하나님의 신적 역사와 은혜와 복의 주권적 단독행위(마20:15)를 왜곡하는 것으로 하나님 뜻에 합의되지 않아 응답을 기대할 수 없으며 넷째, ‘복’은 1인칭 당사자가 기원할 수 있는 복 자체이지만 ‘축복’은 제3자인 타인을 위해 복을 비는 기원자의 신앙적 행위자체인 것이다.
이를 요약하면 복과 축복을 받을 대상은 인간이고 그 복을 주실 주체는 하나님이신데 다만 축복의 기원(祈願)적인 행위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되는 것이다. 즉 축복의 기원자가 제3자를 위해 하나님께 복을 비는 행위가 축복이기 때문에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라는 식의 말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00에게 축복하오니 복을 주옵소서”, “하나님 00에게 축복합니다”라는 말로 사용하여야 한다.
예컨대 이삭이 야곱에게, 아론이 그 후손에게 복을 기원한 것은 축복이고, 야곱과 아론의 자손들이 받은 것은 축복이 아니라 복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기복신앙의 역작용이 많은 한국교회를 위해서 물질의 축복에만 치우친 편협 된 영성을 회복하여 영적인 축복을 우선하는 바른 축복행위를 성경을 표준삼아 해야 할 것이다.
복과 축복의 개념이 혼돈된 채 기복(祈福)행위를 하고 있는 지금의 한국교회의 현실은 과연 복이 되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하고정직하게 비판해야 된다. 강복(降福)과 축복이 뒤섞여서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늘의 한국교회를 위해 ‘축복’하오니 ‘복’을 받게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김석한 / 천안대학교 신대원 실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