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성경 읽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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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성경 읽기(10)
  • 승인 2004.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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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의 신약 읽기


사복음서 <10> - ‘새로운 모세로서의 예수 증거’



동방박사의 방문 이후 마태복음은 성(聖) 가족이 헤롯의 위협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돌아와 갈릴리에 정착하게 된 정황을 설명하고 있다(마 2:13~23). 그런데 이 사실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마태복음만의 독특한 부분이다. 저자 마태는 이것을 기록함으로써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이 문제에 대한 일반적 설명은 예수님을 새로운 모세(New Moses)로 제시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identity)을 공고히 하고, 기독교를 공격하는 회당의 도전을 불식(拂拭)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유대인이 주류였던 마태공동체는 회당 유대교와 갈등 관계에 있었다. 따라서 마태복음을 이해할 때는 회당과의 대립, 혹은 회당의 공격이라는 도전(挑戰)과 그에 대한 응전(應戰)으로서의 마태복음의 특징을 아울러 살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응전의 형태로 나타난 마태복음의 특징 중 중요한 것이 바로 새로운 모세로서의 예수님 소개이다. 모세는 유대인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 즉 모세오경을 기록한 위인으로서, 모세와 율법이 동일시될 정도로, 그리고 예수님과 대조가 될 정도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인물이었다(요 1:17; 눅 16:29, 31; 마 5:17; 참고 마 19:7~8).



이러한 상황에서 마태는 예수님을 새로운 모세로서 모세와 흡사한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헤롯 왕의 남아(男兒) 학살(마 2:16) = 바로 왕의 남아 학살(출 1:22); 애굽으로의 피신(마 2:13-15) = 미디안 광야로의 피신(출 2:11-25); 왕 사후(死後)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마 2:19-21/출 4:18 이하); 30년 간 알려지지 않은 채로 갈릴리에서의 생활 = 40년 간 미디안 광야에서의 생활; 요단 강에서의 세례 = 홍해 바다 건넘(고전 10:2); 40 주야를 광야에서 금식(마 4:1~11/출 24:12~18); 산에 올라 새 율법을 가르침 =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음; 열 가지 기적(마 8~9장) = 10개의 재앙 기적(출 7~11장) 등.



이처럼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모세의 생애에 견주어 소개하는 것은, 모세의 권위 밑에서 살아온 유대인들과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이 모세보다 더 위대한, 모세를 능가하는 권위와 권세를 가지신 메시야임을 밝히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럼으로써 유대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들의 믿음에 확신을 부여하고, 마태공동체를 공격하는 불신 유대인들에게는 모세를 능가하는 권위와 권세를 가진 분으로 제시함으로써 회당의 공격을 불식시키고자 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언약의 성취자인 예수님이 참 하나님의 백성인 새 이스라엘, 즉 그리스도 교회의 인도자임을 밝힘으로써 마침내 유대교의 완성과 성취가 곧 기독교임을 천명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특별히 오랫동안 같은 유대인으로써 회당에서 불신 유대인들과 신앙생활을 함께 했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회당과의 분리로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을 터인데, 새로운 모세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은 그들에게 새로운 확신과 격려가 됐을 것이 분명하다.


/교수·천안대 기독신학대학원



박종수의 구약 읽기


모세오경 <10> - ‘하갈 이야기’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 가나안으로 이주해 사는 동안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사라는 이집트 출신인 자기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준다(창 16:2).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대로 하갈과 동침하게 되고, 하갈은 그 즉시 아이를 잉태한다(창 16:4). 아이를 갖게 된 하갈은 그때부터 여주인 사라를 멸시하게 된다.
어쩌면 사라는 과거와는 달리 너무도 당당해진 하갈을 보면서 아기가 없는 자신이 몸종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현상에 대해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아브라함은 급기야 하갈을 사라의 손에 전적으로 내맡기게 된다(창 16:5~6a).



아브라함으로부터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는 허락을 얻어낸 사라는 하갈에게 복수할 기회를 얻게 되고, 그것은 곧바로 하갈에 대한 학대로 이어진다.
하갈에 대한 사라의 지나친 학대는 하갈에게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이 된다. 그 결과 하갈은 광야로 도망간다(6b). 하갈의 광야행은 분명히 자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억압을 피해 탈출구를 찾는다는 것이 그만 죽음의 땅 광야로 향한 것이다.



그 때 하갈은 광야에 있는 샘 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게 된다(7절). 물 한 방울 없는 황량한 광야에서 샘을 발견한 것은 곧 하나님(생명과 구원)을 만나는 것과 같다. 무엇인가 도피처를 강하게 기대했던 하갈에게 하나님의 사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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